그날 택시 안에서 배운 대화의 색깔

by 아트인사이트


이번에 처음으로 부산 여행을 떠났다.


8월의 부산은 숨이 턱 막힐 만큼 뜨겁고, 공기에는 습기가 묵직하게 깔려 있었다. 처음으로 광안리 해변에 발을 디디자, 바다에서는 파도 소리가 쏟아져 나왔고, 모래 위에서는 온갖 지역의 말투와 웃음소리가 뒤섞여 흘렀다.


하지만 정작 내가 그렇게도 듣고 싶어 하던 부산 사투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서울말, 전라도 사투리, 심지어 외국어까지… 광안리에는 여행객들의 목소리가 바닷바람에 실려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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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요트를 타기 위해 광안리에서 해운대로 가는 택시를 잡았다. 창문 틈새로 바다 냄새가 스며들 무렵, 기사님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 순간, 내가 애타게 기다리던 부산 사투리가 귀에 처음으로 들어왔다. 반가운 마음에 기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나는 무심코 말했다.


“여기서 부산 사투리 처음 들어요!”


그러자 기사님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게 사투리가 아니고, 억양이 센 거죠. 진짜 사투리 쓰면 아가씨들 절대 못 알아들어요. 지금 다 알아듣지 않나? 사투리로 말하면 훨씬 무섭게 들릴걸요.”


그 말이 의외였다. 내 귀에는 분명 사투리처럼 들렸는데, 기사님은 그저 억양일 뿐이라고 했다. 택시에서 내려 요트를 타러 가면서도, 그 대화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사실, 택시 안에서 기사님의 말투가 아주 조금은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정말로 세게 말해서가 아니라, 내 귀가 그 억양에 익숙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어쩌면 기사님은 타지에서 온 손님들을 위해 사투리를 누르고, 억양을 살살 줄이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그 순간, 나도 내 억양을 떠올렸다. 나는 그동안 내 말투가 세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하지만 혹시 누군가는 내가 단호하게 말하거나 빠르게 대답하는 걸 차갑다고 느끼지는 않았을까.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움츠러들게 만들지는 않았을까.


생각해보면, 우리는 말할 때 내용에만 신경 쓰지, 억양이나 속도, 목소리의 온도는 잘 돌아보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방이 기억하는 건 종종 ‘무엇을 말했는가’보다 ‘어떻게 말했는가’다. 같은 문장도 억양이 조금 달라지면 농담이 되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날 선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부산에서 만난 기사님은 아마도 그걸 잘 알고 계셨을 것이다. 그래서 본인 고향의 사투리를 전부 꺼내지 않고, 억양만 살짝 남겨 대화를 이어가셨던 거다. 그건 타지 사람들에게 한 걸음 다가가기 위한 배려였고, 그 배려는 말의 의미보다 억양에서 먼저 전해졌다.


그 일을 떠올리니, 나도 조금은 말투를 바꿔보고 싶어졌다. 빠른 대답 대신 잠깐의 숨 고르기를, 단호한 어조 대신 조금 더 둥근 소리를. 마음이 그대로라도, 억양을 바꾸면 상대방이 느끼는 온도는 달라질 수 있으니까.


말투는 단어보다 더 빠르게 마음에 닿는다. 그리고 그 온도는 말하는 내가 아니라, 듣는 사람이 정한다. 그날 부산의 한 택시 안에서, 나는 억양이란 것이 말보다 먼저 전해지는 마음의 색깔이라는 걸 배웠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내 목소리를 바다처럼 만들고 싶어졌다. 파도는 바위에도 부드럽게 부서지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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