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건물에 살고 있다면 한 번쯤 그 옥상엔 올라가 보아야 한다. 집과 방은 너무 작아서 종종 우리가 얼마나 넓은 세계에 살고 있는지 잊게 만드니까. 그리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동네는 평소의 눈높이로 볼 때보다 훨씬 아름다우니까. 내가 얼마나 작은지, 세상은 또 얼마나 큰지, 그것이 두려우면서 동시에 얼마나 아름다운지 옥상에서는 모두 내려다보인다.
학창 시절, 사진동아리에 들어갔다는 핑계로 아빠를 졸라 DSLR 카메라를 샀다. 처음 가져본 카메라를 들고 괜히 여기저기 셔터를 눌러댔다. 목에 걸린 카메라의 무게가 마치 사명감 같았다. 평소엔 가볼 생각도 안 했던 곳까지 가봐야겠다는 이상한 용기가 생겼다. 당시 우리 가족은 오래된 아파트의 1층에 살았기에,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번도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탈 일이 없었다. 그렇게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엘리베이터에 타서 꼭대기 층 버튼을 눌렀다. 아쉽게도 옥상 문은 잠겨 열리지 않았다. 대신 복도에 작게 난 창 너머로 온 동네가 내려다보였다. 끝없을 것 같던 강변의 끝이 보였고, 강 건너편엔 처음 보는 야트막한 건물들이 있었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동네가 한순간에 낯설어졌다. 그곳에서 나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아니었다. 세상과 나 사이에 아파트 높이만큼의 거리가 생겼다.
때때로 그 거리감이 절실하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몸으로 일깨워줄 만한 감각이. 일에 매달리게 되고 삶에 집착하게 될 때, 원래 이 별에 내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실감하게 해줄 만한 그런 장치가.
그럴 때 옥상만큼 쉬운 탈출구가 없다. 고등학교 옥상엔 언제나 우는 친구들이 있었고, 대학교 옥상은 시험기간마다 특히 붐볐다. 그리고 답답한 일이 생겨버릴 때마다 옥상에서 큰 한숨을 터뜨리던 드라마 속 직장인들. 우리가 발붙이고 있는 현실 중에 가장 현실과 거리가 먼 공간이기 때문일까. 언제나 옥상엔 도망치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다. 자취방 빌라의 옥상에 올라가 보아야겠다고 처음 생각한 것도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었다.
무엇으로부터? 사실 도망치고 싶다는 기분은, 도망치고 싶은 대상을 정확히 파악하면 어느 정도 해결되는 것 같다. 요즘의 나는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걸까? 떠나갈 용기도, 돌아갈 고향도 없다는 고질적인 외로움일까? 아니면 생각보다 빨리 사회인의 시작점에 서게 되었다는 두려움일까? 혹은 오래 좋아해 온 일이 그다지 잘하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자괴감일까? 세 가지를 합쳐보면 난 지금의 현실로부터 멀어질 수 없고, 변화한 환경을 맞이하기에 준비되지 않았으며, 버텨줄 중심이 없어 휘청거리는 상태다. 회피하기도 감당하기도 내 선택지엔 없다. 게다가 지금 일하는 곳은 옥상 문도 잠겨있다. 그러면 나는 이 불명확한 조각들을 모아 모든 문제를 지금 일하는 “곳”의 탓으로 뭉쳐버리는 것이다. 엘리트주의를 혐오하던 내가, 지금보다 더 “좋은” 회사로 가야 하나 불안해하게 되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에 만족한다던 7월의 내가, 나보다 높은 곳을 향하는 이들은 없는지 둘러보고 있는 것이다. 너는 큰 회사에 가야 한다는 회사 상사분의 말씀이 괜히 아픈 것이다. 지금 여기에 만족하는 태도가 내 오랜 자부심이었는데. 온갖 서열질에 등 돌리는 건 내 오랜 신념이었는데. 카메라만으로도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던 시절은 이제 없다.
그러니 옥상에 가야 한다. 지하로 파고드는 건 너무 자기연민 같으니까. 땅굴 속엔 나밖에 없지만 옥상은 그 반대다. 내가 전부인 것 같던 세계에 너무나 많은 사람이 보인다. 그들은 모조리 작다. 그들이 쥐고 있는 것이 최신형 핸드폰이든, 그들이 타고 있는 것이 고급 승용차든, 그들이 사랑을 했든 이별을 했든, 울고 있든 웃고 있든 모든 것이 희미하다. 나 역시 그럴 것이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은 씁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엄청난 위안이 된다. 더 높은 곳으로 아등바등 올라가봤자 그래봤자 옥상일 텐데. 드디어 정상에 올라왔구나 싶을 때 삶은 끝나버릴 텐데. 기억하자. 어디에나 옥상은 있다. 내 것이 아닌 서울의 이 작은 빌라에도 발 디딜 옥상은 있다. 나답지 않은 욕심이 들 땐 이곳에서 모든 걸 내려다보는 거다. 아무것도 아닌 엉망진창 우리. 옥상에서 보면 하찮은 점에 불과하면서도 이토록 별 같은 우리.
어쩌면 옥상은 내게 주어진 세상의 크기. 더 올라갈 곳도 없고 넓혀갈 수도 없는 네모난 땅. 당장이라도 떨어져 삶을 끝낼 수 있는 위험한 공간이지만 그러지 않길 선택할 수 있는 능동적인 공간. 올라온 계단 그대로 되돌아 내려가 원래 있던 작은 방으로 들어간다. 나는 그저 나 한 명으로서 이곳에 있는 것이다. 무언가 되려고 태어난 게 아니다. 무언가 남기려고 살아가는 게 아니다. 그저 또 한 번 옥상 문을 열고 내일을 맞이할 뿐이다. 내게 허락된 시간에 충실할 뿐이다. 그러다 또다시 자아가 운명보다 커다랗게 부풀려고 들면, 옥상으로 올라가 달랠 뿐이다.
옥상에는 재떨이가 있고 사람들이 태우고 간 걱정과 고민이 있다. 대단한 종양 같아도 뱉고 나면 담뱃재만큼 순식간에 흩날리고 마는 한숨들이 있다. 잠시 숨을 돌렸다가 다시 있던 곳으로 내려가길 결심하는 마음들이 있다. 참 사소한 우리지만 별 수 있겠는가. 허무한 구석조차 사랑해야지.
별것 아닌 삶 속에 허물어지지 않는 옥상 하나씩 품기를 바라며.
탁 트인 옥상에서, 9월 막바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