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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

by 아트인사이트


오래 알고 지내온 친구 중에,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열중하는 친구가 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늘 자신이 할 수 있는 진심을 다하고 사랑할 때는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며, 슬퍼할 때도 마음 깊이 슬퍼하던 사람. 그 친구를 보고 있자면, '순도 100퍼센트의 마음'을 형상화한 모습이 바로 이런 거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친구를 보면서 생각했다. 자신의 날을 날카롭게 다듬어서 하나에 집중하기도 모자란 세상에서, 저렇게 모든 일에 전력을 다해도 괜찮을까? 진짜 사랑하는 무언가를 만나게 되었을 때, 힘을 다 써버린 상태가 되면 어쩌려고 그러지?


그렇다면 궁금했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해 무언가를 좋아해 본 적이 있었나? 내겐 혹여 마음이 닳을까 봐 아껴 쓰던 날들만 남아 있었다. 좋아하는 감정도, 슬픔도 마음껏 드러내지 못했다.


마음에는 정해진 총량이 있어서 그걸 다 쓰면 말라버릴 것만 같았다. 언제나 적당한 균형 속에서 내가 그 마음에 잠식되지 않도록 경계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 친구와 달리 그러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걱정이라는 탈을 쓰고 친구의 진심을 평가절하하고 있던 거였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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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 저울이 무거워질 때면 불안했다. 기대는 언제나 실망을 동반하는 법이니까.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지레 겁을 먹고 물러서는 일. 그건 내 오랜 습관이었다.


그런데 그 습관이 정말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었을까? 삶이 어지럽게 휘어질 때마다, 나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허공에 손을 뻗었다. 마음이 다칠까 봐, 늘 적당히 좋아하고 적당히 최선을 다하며 살아온 나에게는 좀처럼 잡히는 게 없었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일은, 오히려 거센 파도 속에서도 나를 단단히 붙잡아주는 닻을 내리는 일이라는 걸.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상처받고 싶지 않아 아이러니하게 좋아하는 마음을 온전히 누릴 기회를 스스로 앗아버렸다. 사랑이 필연적으로 상실을 가져온다고 해서 그 어떠한 것도 사랑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꼴이라니. 이 무슨 빈대 잡는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모습이란 말인가.


문득 예전에 들었던 금속의 이름이 떠올랐다. 형상기억합금. 외부의 압력이나 충격으로 잠시 변형되더라도, 일정한 온도에 도달하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성질을 가진 금속.


만약 삶이 형상기억합금과 닮았다면 아무리 휘어지고 낯선 모양으로 변하더라도, 결국 나는 다시 무언가를 사랑할 수 있는 나로 돌아올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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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중 바라본 높고 맑은 하늘, 코끝을 스치는 푸른 바람. 찰나의 가을 풍경을 사랑한다고 해서 가을이 사라지는 게 아니듯, 좋아하는 마음도 힘껏 표현한다고 해서 닳는 게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오는 계절처럼 사랑이 잠시 흐려지더라도 그 자리는 다른 사랑으로 채워질 것이다.


그러니 좋아하는 마음을 아끼지 않아도 된다고, 늦가을 하늘 아래서 스스로 되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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