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물고기를 키웠다. 구피라는 물고기였는데, 집에서도 번식을 곧잘 해서 처음엔 몇 마리에서 시작했지만 금세 수십 마리로 불어나 있었다. 늘 하교하고는 길다란 원통형 어항을 쳐다보는 낙으로 지내기도 했지만 불행은 예고 없이 다가오지 않던가, 알 수 없는 이유로 구피들은 떼죽음을 당하였고(지금 와서는 아마 전염병 같은 게 아니었을까 생각할 뿐이다) 어린 맘에 나는 엉엉 울어제꼈다. 어항을 붙잡고 한참을 울던 나와 그런 나에게 뭐라 할지 한숨을 쉬던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뇌리에 박혀있다.
고등학교 때는 아끼던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일이 있었다. 내가 키우던 강아지는 아니었지만 어릴 때부터 많이 아끼던 강아지였기에 꽤나 큰 충격과 함께 엉엉 울어버렸었다. 강아지의 평균 수명 정도는 알고 있었고, 나이가 슬슬 차간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의 준비가 이별의 슬픔을 희석시키지는 못했고 그 죽음은 여전히 나에게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언젠가 떠날 수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지금이라는 걸 알지는 못했지 않은가? 엉엉 울면서도 다짐했다. 난 앞으로 강아지는 절대 안 키워.
성인이 되어서는 물고기 한 마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베타라는 물고기 종으로 한 마리씩 격리해서 키워야 하는 종류였다. 이름도 지어주고 집도 꾸며주며 정말 많은 애정을 주었다. 베타와 관련된 카페에 가입해 어떻게 해야 더 건강히 키울지 고민하고 다른 집의 베타들도 구경하고는 했다. 어항 속에서 뭔가 귀여운 행동을 하면 찍어논 동영상도 수십 개였다. 그러던 어느 날 베타가 아픈 듯 보였다. 열심히 인터넷을 뒤지고 사진과 영상을 올리며 조언을 구했다. 약을 구하려 멀리 떨어진 동네에 물고기 약을 파는 약국까지 다녀왔다. 어찌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밤에는 물고기가 멀리 떠나는 악몽을 꾸다 깨기도 일쑤였다. 그러나 비전문가의 손에 키워진 물고기의 운명 같은 것일까, 나의 베타 친구도 결국 나의 눈물과 함께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난 다시 한번 다짐했다. 앞으로 물고기도 안 키울 거야.
난 동물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다. 사실 일반적인 개, 고양이뿐만 아니라 물고기, 파충류, 때로는 곤충까지도 말이다. 곤충 박물관에 갔더니 나 빼고는 온통 초등학생들뿐이라 민망했던 기억이 있기도 하다. 취미 중 하나도 탐조, 즉 새를 관찰하는 것이다. 그런 나는 관심 있는 생물체도 많고, 늘 키우고 싶은 마음도 강하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예뻐하면서 왜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냐고 묻기도 한다. 그럴 때면 늘 내 대답은 같다. 헤어질 엄두가 안 나서 그래. 그러면 다들 대답하곤 한다. 어차피 먼 일이고 그동안 주는 행복이 아주 크다고 말이다. 나도 안다. 그런데 받은 행복만큼 더 슬퍼질 텐데, 난 그게 너무 두렵다.
베타를 키웠던 이유도 어쩌면 물고기는 강아지나 고양이보다 떠나보낼 때 덜 슬프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조금 있었던 것 같다. 교감도 상대적으로 적고, 함께 할 시간도 짧으니 말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더 슬퍼하던 나 스스로를 바라보며 느꼈다. 어떤 이별이든 가벼운 이별은 없다는 점을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너무 사랑해서 함께하지 못하는 자신이 겁쟁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음이 아프기 싫어서 현재의 행복도 받지 않는 게 맞을까? 단순히 애완동물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삶 전체에서도 내가 이런 식으로 포기한 것이 없다 할 수 있을까?
너무 사랑할까 봐 아예 사랑을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 영화 속 자주 나오는 센 척하지만 사실 누구보다 사랑을 원하는 주인공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스크린 밖의 눈으로는 그게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었는데 어쩌면 내가 그렇게 행동하고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난 약점을 만들기 싫었던 것 같다. 소중한 사람이 생기면 그게 약점이 될까 가족도 만들지 않고 살아가는 영화 속 킬러들처럼, 내 마음에 언젠가는 무조건 후벼파지게 될 큰 약점 하나를 만들기 싫은 그런 마음 말이다.
사실 이미 알고 있다. 정말로 사랑하면 그 이별까지도 미워할 수 없이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받은 행복이 크기에 아프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그렇다 해서 내가 바로 애완동물을 키우진 않을 것이다. 생명의 무게는 무겁고, 단순히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데려오기에는 더 큰 결심을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혹여 어떤 만남이 생긴다면, 그때는 두려움을 조금은 내려놓아도 되지 않을까? 내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행복과 사랑이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