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연극계에 종사하셨던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길, 한 번 배우는 영원한 배우라고 한다. 그럼, 한 번 작가였던 사람도 영원한 작가일까? 그런 생각을 종종 한다.
어릴 때부터 막연히 작가가 되고 싶단 생각은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창작에 엄청 열정적인 사람은 아니었을뿐더러 겨우 구상 단계에서 그친 것이 대다수다. 떠오르는 것은 모두 작품으로 완성하고자 했던 어린 시절의 모습은 이제 낯설기만 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신의 창작 활동에 꾸준한 애착이 생기기는 어려워진다. 이 이야기는 무엇을 위한 이야기인지, 왜 이걸 써야 하는지, 객관적으로 완성도가 어떤지를 고려하기 시작할 때부터 창작은 제동이 걸리기 시작한다. 꼭 누구에게 보여줄 목적이 아니더라도 그렇다. 이제 창작은 나 자신부터 만족 혹은 납득을 시켜야 가능한 것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젠 쓰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이걸 위해 무엇부터 공부해야 할까. 라는 생각이 습관적으로 든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진척 없이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나는 올해 초, 충동적으로 문예 창작 수업을 신청했다. 강제적인 시스템하에서는 무엇이라도 나올 수는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 계기였고, 결과적으론 시 1편과 소설 1편을 완성하게 되었다. 완결된 이야기를 내놓았다는 기쁨만큼이나 자신만의 글을 쓰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는 위안도 꽤 컸다.
그러나 이렇게 글을 썼음에도 나는 아직 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 한 편을 더 쓰면 작가라고 할 수 있을까? 작가라 자칭하려면, 최소 몇 편은 써야 할까?
평생 작품 한 편을 완성하지 않았음에도 자신을 작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 같은 사람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누가 맞고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어떻게 정체화하는가에 달린 문제다. 그렇기에 창작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선 계속 생각해 봐야 하는 주제다.
어느 새벽, 충동적으로 떠올린 이야기에 몰입해서 몇 장의 초고를 순식간에 쓴 적이 있었다. 그때 창작으로 얻는 기쁨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가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내가 쓰고자 하는 이야기는 늘 달랐다. 어느 날엔 만화로 그리고 싶었고 어느 날에는 글로 쓰고 싶었다. 장르도, 인물도,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조차 일관성이 없었다. 그렇기에 누군가 내게 왜 작가가 되고 싶어? 묻는다면 그저 재밌어서. 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문예 창작 수업에서 소설을 썼던 이야기를 더 풀어보고자 한다. 완성된 소설로는 두 번째, 공개적인 곳에서 타인에게 보여주고 평가받아 본 것은 첫 번째였다.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큰 장벽이었다. 당연하겠지만 합평에서도 성적에서도 좋은 결과를 내고 싶었으니,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아내야만 했다. 또한 내가 진정으로 헌신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야 했다. 그러나 나를 가장 두렵게 한 생각은 ‘해도 괜찮은’ 이야기인가? 라는 것이었다. 내가 하는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불쾌할 수도, 혹은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창작은 그렇게 되어도 괜찮다는 것이 평소의 내 지론이었지만 직접 써야 할 때가 오니 부담감은 다른 차원에 있었다.
가장 쉽고 진정성 있게 접근할 수 있는 소재는 바로 자전적인 일화라는 생각이 닿자, 이야기를 구체화하는 과정은 어렵지 않았다. 그만큼 나도 내 인생의 어떤 부분을 스스로에게 설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창작을 위한 작은 무대에 자신의 삶을 올려놓고 나면 그 이야기의 동력과 작동 구조까지 다 들여다보게 된다. 유독 기억에 남으나 단편적이고 구석에 머물러 있던 파편들을 가져와 이야기의 중심에 세우자, 설명하지 못할 묘한 쾌감이 몰려왔다.
합평에서 내가 듣기 두려워한 평으로 몇 가지가 있었다. 글이 조약하다. 구성이 허술하다. 대화가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 라는 말이 그랬다. 그리고 내가 두려워하지 않는 평도 있었다.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좀 불편하다. 소재를 이런 방식으로 활용한 것이 잘못된 것 같다. 라는 말이 그랬다.
누군가는 내 이야기의 의도와는 아예 다른 부분을 짚고 평하기도 했는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이 굉장히 즐거웠던 것 같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내 이야기가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닌 오로지 나만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라 그렇지 않았을까. 때로는 타인이 이해할 수 없고, 심지어는 자신조차도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사실을, 글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서서히 깨달았던 것 같다.
수업 이후 나는 새로운 창작을 하지는 않았다. 쓰고 싶은 이야기를 무리해서 찾기보다는 현재의 내 삶을 감각하는 경험이 더 재밌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러다 보면 가끔은 창작으로 재구성하고 싶은 사건을 마주치기도 했다. 작가들은 늘 이런 걸 느끼며 사는 사람들일까? 그러한 이야기들이 두텁게 쌓인 지금, 나는 또 새로운 글을 쓰려 한다. 가능하면 이번 겨울에. 이전보다 서투를지라도 더 진솔한 이야기를 쓸 수 있길 바라고, 더 큰 용기를 가지고 끝내 완성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