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엔 어른여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by 아트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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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덟이 되었다. 28. 어른스러운 숫자다. 그만큼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작년부터 어쩐지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나이를 말할 때 머쓱해졌다. 나이 자체가 부끄러운 것은 아니고, 나이에 전혀 걸맞지 않은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언젠가부터 나는 사람을 대할 때 아이처럼 굴기를 택했다. 순진하고 서투른 모습을 구태여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어리숙하게 행동하면 나중에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덜 민망하므로. 어른스럽게 굴수록 더 크게 지게 될 책임과 기대를 피하고 싶었고, 어느 정도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이십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이 전략을 써먹기가 점점 민망해졌다. 나보다 어리면서도 훨씬 성숙한 사람들을 마주칠수록 더 그랬다. 여전히 젊지만 어리다고 둘러대기에는 애매한 나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어렸을 적 상상하던 스물여덟은 두말할 필요 없는 어른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 선생님 나이가 스물여덟이었으니까. 단정한 손글씨를 쓰고, 성숙한 목소리를 내고, 여유와 관록으로 어린 청중을 가볍게 압도할 수 있는 어른. 돌이켜보면 인터넷 소설 속 뜨거운 사랑을 하던 열여덟 고등학생들도 조숙하고, 방송에 나와 밥벌이를 하는 이십대 초반 아이돌들도 한참 어른스러웠다. 그러나 2026년 스물여덟의 나는 어떤가. 삐뚤빼뚤한 글씨체, 아이의 위치를 점하는 게 습관이 되어 여전히 앳된 발성과 행동. 어릴 적 내가 상상하던 스물여덟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열한 살의 나에게 지금의 나를 보여주면 충격 받을지도 모르겠다.


어리석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철없는 아이처럼 사는 게 별 문제 없다고 생각했다. 사회가 정한 생애주기 시간표를 따를 필요 없다는 말을 내 입맛에 맞게 받아들이고, 미숙한 성인들을 긍정하는 사회 분위기에 흔쾌히 편승했다. 더욱이 성인의 자유는 누리면서도 어른의 책임은 손쉽게 유예할 수 있는 대학생 신분을 오래 유지한 탓에, 어른이 아닌 성인으로 사는 것이 익숙했다.


그러나 한두 해가 더 흐르고,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그동안 외면했던 숙제가 한꺼번에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마저도 얼마간 못 본 척 했다. 하지만 수년간 회피하며 쌓인 자기혐오와 수치심은 더 이상 두고 보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작년과 다르지 않은 올해,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은 삶에 대한 만족감을 갈수록 빠르게 떨어뜨렸다. 더는 미룰 수 없었다. 무책임하게 미뤄왔던 ‘나중’이 바로 지금이었다.


그래서 올해는 어른여자가 되어 보겠다고 마음 먹었다.


어른여자란 무엇인가. 단정하게 몸을 관리하고, 꼭 맞는 세련된 옷을 입으며, 당당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 나는 편안하고 아기자기한 옷을 즐겨 입는 데다 지금껏 백수로 지내온 탓에 격식 있는 옷이 거의 없다. 고상하고 불편한 옷을 매일 입지는 못하겠지만, 몇 벌쯤 마련해두고 종종 입을 생각이다.


단정해지기 위해서는 피부와 손톱을 깔끔히 정돈하고, 무엇보다 자세를 바르게 해야 할 테다. 바른 자세를 만들기 위해서는 코어 근육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꾸준히 운동을 해야 한다. 어린아이처럼 응석 부리고 싶은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라도 체력은 필수다.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이라 단번에 당당한 태도를 갖추긴 어렵겠지만, 올해는 정말 남의 시선을 덜 의식하며 살고 싶다. 친구들과의 연말 회고 모임에서도 밝혔지만, 올해는 이 문장들을 주문처럼 외우고 다니기로 했다. ‘쫄지마! 어쩔 건데’.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다른 사람 눈치가 보일 때마다 눈을 부릅 뜨고 중얼중얼 되뇌어야지. 나의 바깥으로 자꾸 주의가 쏠리는 것을 아예 막을 수는 없겠지만, 가능한 한 나에게 집중해보려 한다.


지금까지 말한 것들을 실천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하는 태도이자, 어른여자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놀랍지 않게도 성실함일 것이다. 내가 원하는 모습에 가까워지기 위해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성실히 해내는 것 그렇게 스스로를 부지런히 돌보고 가꿔서, 본인의 생활을 소개할 때 변명을 늘어놓지 않는 것. 요즘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어른여자인 김연경 감독이 말했듯, excuse가 아니라 solution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러니까 어른여자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에 다름없다.


그래. 만 26년 동안 이어져온 나와의 불화를 해소하고 싶다. 열심히 어른여자가 되어서 지금까지보다 더 오랜 시간 함께 할 나와 돈독해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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