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살이 몇 핸가요?

by 아트인사이트


날이 많이 추워졌다. 그 말인 즉슨, 매일 사무실로 출근하는 직장인들의 준비 과정이 하나의 미션이 되었음을 뜻한다. 겨울의 출근길은 유난히 힘들다. 오늘도 나의 사랑스런 이불, 전기장판과의 이별을 슬퍼하며 머리를 감고,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화장을 하면서 나의 텐션을 올릴 노래 리스트를 선곡하고 있었다.


나는 뮤지컬 덕후라 사실 내 알고리듬은 뮤지컬 노래로 가득 차 있었다. 알고리듬에 나의 텐션을 맡기며 무심히 듣던 와중 힘차게 시작하는 한 익숙한 전주를 듣자마자 소름이 돋는 노래가 있었다.


그건 바로 뮤지컬 <빨래>의 '서울살이 몇 핸가요? (reprise)'였다. 이 뮤지컬을 보진 않았지만, 이 노래는 힘찬 멜로디로 시작하는 전주만 들어도 나의 가슴을 울렁이게 만드는 노래 중 하나다. 그 이유가 뭘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아마도 나도 '내 꿈을 위해' 서울살이를 하고 있는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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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은 '서울살이'를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람들 각각은 모두 자신의 꿈을 위해 셋방살이를 하며 수없이 이사를 다녔던 사람들이다.


그중 나영이라는 인물의 가사가 유독 마음을 울린다. 이 곡을 듣다 보면, 그녀는 자신의 꿈을 위해 서울에 산 연수(年數)만큼이나 이사를 다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나영이가 서울에 산 연수만큼이었을 때 나도 이 곡을 처음 들었었기에 그 인물에 나의 모습이 투영되기도 했다.


곡의 후반부 가사는 이러하다.


서울살이 여러 해 당신의 꿈 아직 그대론가요?

나의 꿈 닳아서 지워진 지 오래

잃어버린 꿈 어디 어느 방에 두고 왔나요?


빨래처럼 흔들리다 떨어진 우리의 일상이지만

당신의 젖은 마음 빨랫줄에 널어요


바람이 우릴 말려줄 거에요

당신의 아픈 마음 꾹 짜서 널어요


바람이 우릴 말려줄 거에요

당신의 아픈 마음 털털 털어서 널어요


나도 어느덧 서울살이 11년 차가 되었고 이사는 그 연수에서 곱절의 횟수만큼 다녔다. 주말이 지나 한 주가 다시 돌아왔음에 아쉬워하며 출근 준비를 하다가 이 노래를 우연히 듣게 된 그때, 난 잠시 멈칫했다. '난 무엇을 위해 아직도 서울에 머물러 있는가? 내 꿈은 뭐였던가?'


서울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적엔 나 혼자 이 큰 땅에 덩그러니 혼자 놓인 것 같은 고독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 고독을 감당하기 위해 서울 시내 한복판을 걷고 또 걷고, 그렇게 무작정 걸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나영이 부르는 가사처럼, 늘어나는 나이와 집세만큼이나 함께 하는 사람들도 늘어났지만 말이다. 그러다 프랑스로 교환학생으로 가서 한국을 떠나 있었을 때나, 코로나로 인해 본가에 있었을 땐 서울이 막상 그리워지는 날도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흘러, 무작정 내 꿈을 위해 달려 살아낸 시간만큼 나는 어느샌가 서울에 길들어졌다. (물론 서울에서 셋방살이의 신세를 벗어나게 되는 날이 과연 올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의 고향은 이제 어디인가? 본향은 대구지만, 이제 나에게 고향은 서울이 아닌가 싶다. 서울에 산 시간이 늘어나고 그에 따라 마음은 편해진 만큼 꿈은 무뎌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 그 노래를 다시 들으며, 내 꿈을 위해 서울 땅을 밟았던 그 처음의 마음을 다시 되짚어본다. 그리고 이 글을 읽어주시는 감사한 분들께도 묻는다.


"서울살이 몇 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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