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쓸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지도 몇 달이 됐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 글을 쓸 만한 자질이 없는 것 같았다. 글 쓰는 사람이라면 사람과 세상을 유심히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하는데,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내가 어떻게 보일지 전전긍긍하는 데 보냈다.
삶을 천에 비유한다면, 내 천에는 구멍이 잔뜩 뚫린 것만 같았다. 예전에는 원래 그렇게 디자인된 것인 양 굴었지만 날이 갈수록 구멍들이 부끄러워졌다. 더 많은 구멍이 눈에 들어왔고 어떤 것은 심지어 더 커진 것 같았다. 사람들이 구멍이 숭숭 나 있는 내 천을 보고 한심하게 여길 것 같았다. 아직도 저렇게 구멍 난 채로 살아?
변변한 직업이 없었고, 그렇다고 구직을 위해 정성을 들이고 있다고 말하기도 어려웠고, 가슴 뛰는 이상을 품고 있지도 않았다. 게으른 조바심만 있었다. 이것도 꿰매야 하고, 저것도 기워야 하는데. 발만 동동거렸다. 나만의 특별한 고통은 아니라 이렇게 구구절절 말하는 것도 지루한 일일테지만 그랬다. 그래서 허둥거리며 구멍을 기우기 시작했다. 방을 치우고, 하루를 계획하고, 기록하고, 글을 읽고, 외모를 가꾸었다. 늘 그래왔듯이 민첩하고 부지런하지는 않았으나 눈에 보이는 구멍들을 하나둘 메워보려 했다. 이제는 매끈한 천을 가지고 싶었다. 흠이나 거친 데 없이 부드럽고 반드러운, 차림이나 꾸밈새가 환하고 깨끗한, 생김새가 말쑥하고 훤칠한. 사람들은 성실한 사람을 좋아하는데 내게는 더 이상 손쉽게 성실함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들이 없으니, 삶을 더 매끈하게 기워내 내가 성실하다는 것을 보여줘야했다.
내면을 깊숙이 파고들거나 세상을 유심히 살피는 일은 뒷전이 되었다. 그런 일들은 시간이 한참 걸리면서도 당장 눈에 띄는 구멍을 메우지 못했다. 미끈하고 건실한 청년이 되는 데 필요한 만큼만 생각했다. 그러니 흰 화면 앞에 앉을 때면 막막한 기분이었다. 도무지 무슨 글을 써야 좋을지 몰랐다. 파란 뱃지를 단 트위터 계정들처럼 “이렇게 저렇게 자기계발 하세요!” 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나는 여전히 불성실하고 참을성이 없없으며 사흘에 한번씩 무너졌다. 사랑스러운 척 구는 글은 더 쓸 수 없었다. 지난 여름까지만 해도 어렵지 않게 써졌는데. 연초에는 새로이 삶을 구성해보겠다는 열의에, 봄과 여름엔 따뜻한 공기와 알록달록한 색에 취해 잘도 써졌더랬다. 그러나 무더운 열기도 사그라들고, 연이은 서류 탈락과 함께 건조하게 식은 바람이 불어왔다. 정신이 메마르고 밥 먹듯 좌절했다. 귀엽고 다정한 생각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는 글은 선택지에 없었다. 지인들에게 초라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전애인들이라도 읽는다고 생각하면 끔찍했다. 더군다나 내 절망은 멋진 작가들이 써내는 것처럼 생에 대한 오랜 고민이 담긴 것도 아니었으니까. 제 풀에 쓰러지고는 애먼 실바람을 탓하며 우는, 무용하기만 하고 아름답지는 않은 글에 불과할 것이었다.
여전히 같은 생각이다. 이 글을 사람들이 읽을 거라고 생각하면 좀 쪽팔린다.
그런데도 결국 쓰게 된 것은 며칠 전 읽은 글 때문이다. 오랜만에 다시 구독한 지식 콘텐츠 서비스에서 한 작가의 인터뷰를 읽었다. 이슬아 작가의 스승인 어딘 작가의 인터뷰였다. 마침 인생의 영감을 얻기 위해 이슬아 작가의 책을 사서 읽고 있던 터라 곧장 눌러봤다. 그녀가 글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대목에서 나는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좋은 글은 세상을 나만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세상과 인간을 낯설게 하는 글이라는데, 그에 한참 못 미치는 글을 많이도 내보였다는 사실이 새삼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용기가 났다. 멋있어 보이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부끄럽고 이상한 이야기를 쓰라는 말 때문이었다.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야말로 써야 하는 이야기라고.
그래서 이번에는 초라한 나를 꾸미지 않고 고백해보기로 했다. 지루한 푸념일지라도. 그럼에도 막상 써서 내보일 생각을 하니 부끄러움이 밀려들어서 스스로를 설득해본다. 아름답고 건강한 삶을 흉내 내는 것보다 이렇게 궁상맞은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편이 덜 초라하고 오히려 낭만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 B급 영화나 독립영화를 보면 꼭 어딘가 허접하고 찌질한 인물들이 주인공이지 않던가. 그렇다면 이것도 나름 영화 같다고 우길수 있을 것이다.
또 스승의 가르침대로 이슬아 같은 멋진 여자들도 자신의 찌질하고 내밀한 면을 꾸밈없이 써내지 않던가. 치부를 드러내는 것은 어쩌면 멋진 여자가 되기 위한 필수조건일지도 모른다. 솔직한 내면을 공개해도 괜찮을 만큼 충분히 멋짐을 획득한 후에 내보인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그렇지만 아무것도 아닌 나도 초라한 모습을 드러내도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내 글을 관심 있게 읽을 지인들은 손에 꼽을 만큼 적을 테고. 또 한편으로, 일단 저질러놓으면 그저 그렇기만 한 사람만으로 남지 않기 위해 예전보다 더 성실히 훌륭한 인물이 되기 위해 애쓰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정말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남고 말 테니까. 멋있는 척 글 쓰는 것보다 차라리 찌질한 면을 드러내는 게 정말 멋있어지기 위한 길일지 모른다.
그래. 올해의 모토는 ‘Dance like no one’s watching’으로 정했으니까. 연초에 싱겁고 허접한 춤을 춰보이면 남은 한 해도 모토에 맞게 살 수 있겠지. 그리하여 사사롭고 게으른 푸념을 무작정 쏟아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