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를 스스로 정의하는 것.
우리는 말을 쉽게 사용한다. 익숙한 단어는 굳이 정의하지 않아도 통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정의되지 않은 말은 결국 타인의 기준을 빌려 쓰는 것에 가깝다. 무엇을 ‘성공’이라 부르고, 무엇을 ‘사랑’이라 말하며, 누구를 두고 ‘멋있다’고 칭하는지에는 저마다의 기준이 숨어 있다. 단어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내가 지지하는 가치의 이름이다. 그래서 단어를 재정의하는 일은 사소하지 않다. 그것은 내가 어떤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갈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자신이 늘 하는 말이 있다면 스스로 정의해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뒤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칭찬, “멋있다”를 내 나름대로 정의해보고 싶어졌다.
“멋있다”
몸과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어떤 기운이 흘러나오는 사람이 있다. 말과 행동이 어긋나지 않고 한 사람 안에서 일치할 때, 나는 그에게서 설득력을 느낀다. 그리고 그 설득력은 존중으로 이어진다.
“멋있다” 라는 단어를 스스로 정의하게 된 계기는 외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만난 한 셰프였다. 그는 나와 많이 달랐고, 내가 닮고 싶은 삶을 사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의 말과 행동에는 늘 일관성이 있었다. 책임을 피하지 않았고, 감정을 과시하지도 않았다. 그 일치가 자연스럽게 ‘멋있다’는 감각으로 이어졌다. 그를 보며 나는 “입은 무겁게, 마음은 가볍게”라는 나만의 모토를 갖게 되었다.
그가 짊어지고 있던 책임의 무게를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것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무게를 안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가벼워 보였고, 복잡한 환경 속에서도 스스로 세운 기준에서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23살이였던 내가 그를 통해 감지한 멋은 아마 그 지점에 있었을 것이다.
몇 년이 흐른 뒤, 직장인이 된 나는 “멋있다”라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고 존경하는 상사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나 단둘이 대화를 나누던 자리에서 그는 내게 물었다.
“멋있는 게 뭐야? 멋있다는 말을 스스로 정의해 볼 줄 알아야 해. (...) 멋있는 건 뻔뻔한 거야.”
사실 나는 이미 몇 년 전 나만의 정의를 내려둔 상태였지만, 그 질문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정의는 내 기준을 흔들었다. 뻔뻔함. 나는 그 단어를 멋과 연결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곱씹을수록 이해가 갔다. 혼자 그려낸 방향을 밀고 나가면서, 스물다섯 명의 구성원이 따라와 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한 리더. 외로움을 알면서도 책임을 피하지 않는 태도.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며 “나를 믿어달라”라고 보여주는 사람.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좋아한 것은 분위기나 타고난 기질이 아니었다는 것을. 기준을 세우고, 그것을 흔들림 없이 책임지는 태도, 나는 그 일관성에 끌렸던 것이다. 언젠가, 내가 생각해 온 ‘멋’이라는 기준을 말이 아니라 태도로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스스로 정의해 본 순간에야 비로소, 그 단어는 나를 설명하는 기준이 된다. 그래서 나는 한 번 정의 내려본다.
“멋이란 타고난 분위기가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기준을 뻔뻔하게 책임지는 태도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 하나를 오래 들여다보는 일은, 결국 나 자신을 다시 정의하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