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레시피

by 아트인사이트


내가 엄마한테 요리를 해준 적이 있던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던 날이 있다. 엄마는 내게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은 음식을 먹인 날들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늘 집에 가면 따뜻한 밥이 있었다. 내게 엄마는 다정했고 따뜻했고 늘 온기로 가득 찬 사람이었다. 태어나 보니 엄마가 있었고 늘 그 아래에서 영양만 가득 먹고 자랐다. 그렇게 살다 보니, 엄마의 밥을 먹는 건 당연한 날의 연속이었다.


어릴 적 아주 어릴 적에 친구를 데려와 집 안에 냉장고를 다 뒤적이고 꺼내 먹다가 냉장고 문도 제대로 안 닫고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기억은 잘 안 나는데, 그렇다고 한다. 그 이후로 나는 주방에서 스스로 뭔가를 해본 적이 크게 없다. 중고등학생이 돼서야 간단하게 계란말이나 스크램블만 했다. 엄마의 요리는 늘 맛있었다. 넣는 게 없어 보이는데도 맛있었다. 특별하게 오래 시간을 들이지 않았음에도 늘 맛있었다. 그 뒤에 녹여진 시간을 모른 채 그저 엄마라는 이름에 붙혀진 손맛을 마법처럼 느꼈다.


나는 가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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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그게 당연하게 되지 않던 날이 있다.


어느덧 딸은 혼자 살게 되는 날이 온다. 벗어나고 싶지 않았지만 상황은 그렇게 흘러갔다. 처음엔 기숙사에 살아서 컵라면이나 하기 쉬운 전자레인지 치즈 밥을 해먹었다. 치즈와 케첩을 넣고 햄을 넣어 섞으면 되는 요리 같은 조리. 그러다 처음으로 자취를 하게 된다. 온전하게 혼자 살고 해나가야만 했다. 집엔 반겨주던 모든 이들이 없어 슬펐고, 깨끗한 집도 늘 좋은 향이 나던 빨래도 때가 되면 늘 먹던 밥도, 늘 깨끗하던 화장실 거울도 뭐 하나 당연한 게 없었다. 딸은 혼자 살아보며 많은 깨달음과 소중함을 얻었다.


그런 성장의 시간이 단단히 여물어 가고 있을 때쯤 딸은 본가인 울산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하루는 엄마와 단둘이 밥을 먹게 되는 날이 있었다. 그때 문득 엄마에게 요리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 감정은 복합적이었다. 엄마는 모르는 나의 레시피로 엄마에게 고마움을 대접해 주고 싶었고 또한 세월이 이렇게 흘러 나만의 레시피로 요리를 해줄 수 있음에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같이 식사를 하는 것에 대한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커가지만 엄마는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그런 시간에 대한 애잔함도 묻어있었다. 그렇게 마트에서 장을 봐와서 요리를 시작했다. 크게 어려울 것도 구하기 힘들만한 비싸고 귀한 재료도 아니었다. 참치 한 캔과 버섯 애호박 양파 고추 조금이 다였던 참치 쌈밥이다.


모든 야채들은 입에 넣기 좋은 크기로 작고 네모나게 썰어준다. 그리고 참치 기름에 야채들을 다 볶아준다. 너무 세게 볶지는 말고 식감이 살아있을 정도면 된다. 그러다가 숨이 조금 죽었을 때 재래식 된장 한 스푼과 고추장 한 스푼을 넣어 마저 볶아준다. 그리고 고소하게 잘 볶아진 향이 나면 물을 자작하게 넣어준다. 찌개가 아니라 자작한 쌈장을 만들기에 재료가 물에 잠기지 않을 정도로 부어준다. 부족하면 중간에 물을 넣어도 되고 너무 많이 부었다면 물이 날아갈 때까지 졸이면 된다. 그리고 설탕 반 스푼 다진 마늘 반 스푼과 참치 한 캔 마지막으로 청양고추를 입에 걸리는 것 없게 잘게 다져 넣어주고 끓여주면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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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레시피는 처음부터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나도 처음엔 누군가의 레시피를 참고했다. 하지만 거기서 조금씩 줄여가고 더해가 입맛에 맞는 나의 레시피가 나왔다. 레시피에선 빡빡하게 끓였지만 나는 밥에 비벼 먹고 싶어 물을 적게 넣고 레시피에는 들어가지 않는 채소들도 내가 좋아하기에 넣고 양념도 내 입맛에 맞춰 양을 조절하고, 그렇게 짜고 달고 맵고를 몇 번을 반복하다 완성되었다.


그렇게 만든 음식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에게 내어주는 마음은 따뜻했다. 처음으로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말이 무엇인지를 느꼈다.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것, 그렇게 보고만 있어도 반짝이며 먹고 있는 누군가의 행복을 맛보았기 때문에 그보다 맛있는 배부름은 없었다. 다음엔 더 좋은 걸 해주고 싶고 더 배부르게 해주고 싶고 또다시 더 노력해 보고 싶은 그 마음에서 엄마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어렸지만 엄마도 어렸던 그 서투르던 손에 정성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이제는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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