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를 완벽히 예측하는건 불가능하다. 자연은 비선형계인 카오스 그 자체이다.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달해도, 기상청이 욕을 먹지 않은 날이 오는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지구에 사는 한, 우리는 날씨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노아의 방주처럼 돔을 쌓아올린다고 하더라도, 태풍이 불 때 돔이 날아갈까봐 발을 동동 굴러야하지 않을까.
그래서 날씨는 강하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는 더욱 그렇다.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의 야외 결혼식도 비바람이 불 수 있다. 녹아내린 질퍽한 회색 눈은 멀끔하게 차려입은 CEO의 바짓자락을 젖게할 수 있다. 불특정다수에게 이렇게나 우연하고 공평하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는게 어디있을까. 예측 불가능한 날씨, 그리고 그 날씨가 모인 계절을 즐길 수 있다면, 삶은 꽤나 재밌어질 것이다.
어릿어릿 오는 봄을 즐기는 방법은 여러가지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확실한 방법은 꽃을 보는 것이다. 흰색, 노란색, 분홍색. 각양각색으로 그 자태를 자랑하는 꽃을 보다보면, 꽃을 예쁘다고 느끼는 감각이 생경하게 느껴진다.
꽃은 왜 예쁠까. 꽃이 예쁜게 아니라 예쁜 것이 꽃이겠지? 그러니까 예쁘다는 개념보다 꽃이 먼저 존재했겠지. 마치 별을 보고 예쁘다고 느끼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우리가 반짝반짝 빛나는 야경을 보며 예쁘다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서울 밤하늘의 별은 비록 야경에 못 미치게 되었지만, 우리 주변에서 꽃은 여전히 쉽게 볼 수 있다.
다만 너무 쉽게 볼 수 있게되어 매력을 느끼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준비했다.
봄의 시작을 앞장서 알리는 목련이다. 내가 다니는 학교의 교목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동대문구의 구화가 아니랄까봐,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꽃 중 하나이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목련은 중국 원산의 백목련으로, 목련과 백목련은 사실 같은 속 다른 종이다. (중국어로 목련은 뮬란, 그 디즈니의 뮬란이 맞다) 백목련이 아닌 목련을 보고 싶다면, 국내 유일한 목련 자생지 한라산에 가보는건 어떨까.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300년 된 목련도 함께 볼 수 있다. 올라오면서 경상남도 함양에 들러 목련차를 마셔보는 것도 좋겠다. 꽃이 핀 것도 시든 것도 아닌, 꼭 꽃봉오리를 우려내야만 염증을 낮춰줄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비염이 있는 친구에게 점수를 딸 수 있는 기회이다. (단, 농약이 있을 수도 있으니 길거리에서 직접 뜯는건 안된다)
목련속의 나무는 무려 9,500만년 전 백악기 때부터 현대까지 살아남은 가장 오래된 꽃 중 하나라고 한다. 나무위키에서는 백악기 후대에 서식한 트로오돈과 공룡들 옆에 있는 목련의 모습을 재현한 AI 사진을 볼 수 있는데, 정말 웃기다. 무려 벌과 나비가 존재하기도 전에 딱정벌레가 꽃가루를 옮겨주었다고 한다. 살아있는 화석이라고도 불리는 목련, 내일부터는 조금 다르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개나리는 대한민국의 고유 식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 화단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해외에서는 아주 희귀한 꽃이다. 다만, 한국이 원산지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손을 탄지 너무 오래되어 자생지가 멸실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자생지가 없는 자생식물이 되었다고 한다. (재배식물은 확실히 아니기 때문에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자생식물로 등록되어있다.)
나리나리 개나리-에서 개나리라는 이름은 나리(백합)와 꽃 모양이 비슷하지만, 급이 낮다라는 뜻에서 접두사 "개"를 붙여 탄생한 이름이라고 한다. 한국 고유의 식물이라는 점이 또 다시 체감되는 순간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에서는 개나리꽃의 유래에 대하여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를 읽을 수 있다.
어느 부자집에 스님이 시주를 청하러 갔더니 부자는 “우리집엔 개똥도 없소.”라고 하면서 박대를 했지만, 이웃의 가난한 사람은 정성껏 시주를 했다.
그러자 스님이 짚으로 멱둥구미(짚으로 둥글게 만든 곡식을 담는 소쿠리 같은 그릇) 하나를 만들어 주고는 사라졌는데 그 속에서 쌀이 계속 쏟아져 나와 가난한 사람은 금방 부자가 되었다.
이웃 부자가 이 사실을 알고는 몹시 원통해 하였는데 이듬해에 그 스님이 또 시주를 청하러 왔다. 부자가 이번에는 쌀을 시주하자, 스님이 역시 멱둥구미 하나를 만들어 주고는 사라졌는데 열어보았더니 쌀 대신 개똥이 가득 들어 있었다. 주인이 놀라 그것을 울타리 밑에다 묻어두었는데 거기서 개나리꽃이 피게 되었다는 것이다.
-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봄하면 빼놓을 수 없는 꽃이다. 석촌호수, 여의도, 양재천, 진해... 올해는 또 얼마나 많은 인파가 모일지 기대가 된다. 우리가 흔히 꽃구경을 가서 보게 되는 벚꽃은 일본이 개발해낸 품종이며, 한국 품종의 벚나무는 제주 및 전라남도에서 자생하는 제주 왕벚나무가 있다.
벚꽃을 피워내는 벚나무는 꽤 능력이 좋은 나무이다. 팔만대장경의 반 이상이 벚나무일만큼, 응집력이 대단하고 자생력이 아주 뛰어나다. 특히, 조선시대의 주력 무기 각궁을 만드는 데에 벚나무 껍질을 사용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목재의 향도 좋아서 훈연 목재로 사용할 경우 고급스러운 향을 끌어낼 수 있다고 한다.
일본은 특히 벚꽃을 사랑하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고등학교 시절 일본어 선생님께 들은 적이 있다. 벚꽃은 질 때가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한다. 꽃의 모양이나 색상, 향기 따위가 아니라 벚꽃의 유한함과 덧 없음의 미를 포착한다고 했다. 사무라이가 할복할 때 흩날리는 벚꽃처럼. 추락하는 벚꽃을 보며 예쁘다고 느끼는 것은 어쩌면 피고 지는 유한함, 자연의 순리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예쁜 것은 모두 자연에서 왔다. 자연에서 온 것을 예쁘다고 한다. 그리고 여름은 봄을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죽음은 생을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오늘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건 다가오는 내일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오늘이 조금은 아쉽고 내일이 조금은 기대가 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