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나쁜 것이 있다.
"슬프고 어두운 것을 조심해라 그 속에 가장 나쁜 것이 있다."
며칠 전, 우연히 본 문장 하나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느 SNS 게시글에 달린 댓글이었다.
이 게시글 화자는 '슬프고 어두운' 일상의 부분을 꽤 가벼운 어조로 털어놓고 있었다. 아주 약간의 자조를 담아서. 그래서도 이 댓글이 어떤 핵심을 찌른 것 같은 느낌이 든 것일까. 누군지 몰라도 슬프고 어두운 감상을 '조심하라'는 경고에, 마음 한쪽에 왠지 모를 물결이 잔잔히 일었다. 아마 그 말이, 나에게 하는 말처럼 들려서였을까.
"00 소개해줄까요?"
"그 분, 인스타를 봤는데."
"구리죠."
"아니ㅋㅋㅋ 왠지, 쉽게 상처 받는 사람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리고 동의를 얻었다, 맞다고, 그런 사람이라고.
인스타그램만 봐도 알 수 있지, 네가 어떤 사람인지. 그럼 나도 어떤 사람인지 누군가에게 읽히고 있겠구나. 이런… 우스운 건, 남을 판단하는 건 이렇게나 쉬운데 나의 인스타그램 피드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스크롤해도, 사진을 무심코 한 장 한 장 넘겨 봐도, 도무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나라서, 할 수가 없다.
예은: 아 뭐야, 나 이상하게 나왔잖아.
지원: 뭘, 너처럼 나왔는데.
예은: 내가 무슨 이렇게 생겼어. 봐봐. 내가 이렇게 생겼어?
이나: 어, 너 그렇게 생겼어.
예은: 아니야, 나 아니야. 나 이렇게 안 생겼어.
진명: 넌 네 얼굴 모르잖아.
예은: 왜 몰라? 맨날 거울 보는데.
진명: 직접 본 적 없잖아. 그러니까, 거울이 진짜인지, 사진이 진짜인지. 넌 모르는 거고.
은재: 그러고 보면, 내 얼굴을 나만 못 보는 거잖아요. 그거 왠지 무섭지 않아요?
"있어. 당연히 있지."
고맙다 친구야. 네가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으면 나는 지금 스스로를 엄청난 성격파탄자라 생각하며 자괴감에 허우적거리고 있었을 거야. 이런 위로를 건네는 너도 사람이지, 알고는 있어. 그런데도 이유 없이 사람이 싫다는 지금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밖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사람인 너에게 '사람이 싫다'고 말하는 모순을 저지르고 있구나. 원하는 쪽으로 쉽게 방향을 틀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그만큼 가벼운 존재가 아니겠지, 사람은.
"네가 나에게 이리 눈 부신 건 내가 너무나 짙은 밤이기 때문인 걸" -Dear Moon, 제휘
어둠이 왜 나빠. 무언가 빛날 수 있는 이유는 어둠 때문인데. 저 혼자 세상에 잘난 것처럼 휘황찬란함을 뽐내는 '빛'아, 네가 그렇게 경멸하는 '어둠'이 없었으면 애초에 너도 없었어.
"자기가 그린 그림을 유심히 보고, 그때마다 작업의 특징을 적어 놓는 게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이 사람 같은 경우, 어두운 부분이라도, 이 안의 변화에 집중하고 있어요. 다 같은 어둠으로 보지 않는다는 거죠. 어두운 부분도 디테일하게 표현하고 있잖아요. 반면 이 사람한테는, 그냥 어두운 건 어두운 거고, 밝은 건 밝은 거예요. 과감하게 한 면으로 처리해버렸어요. 단순하죠. 어떤 방식이 더 잘했다, 아니다, 말할 수 없어요. 중요한 게 아니에요. 대신, 이런 성향이 나중의 작업으로 연결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자신의 작업을 잘 파악해 두세요."
"넌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내 말에 모래는 고개를 돌렸다. 그 말이 모래를 어떻게 아프게 할지 나는 알았다. 나는 고의로 그 말을 했다. 너처럼 부족함 없이 자란 애가 우리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느냐고, 네가 아무리 사려 깊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네가 뭘 알아, 네가 뭘. 그건 마음이 구겨져 있는 사람 특유의 과시였다.
-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 126-127쪽
한때 나를 가르치던 어떤 사람에게, 영화 <한공주>를 추천했던 적이 있다. 한번 보시라고, 좋다고. 그 분은 영화를 보고 와서 내게 말했다. "너는 어두운 걸 좋아하는구나." 마치 나를 잘 안다는 듯이, 그 뒤로는 잘 생각나지 않는 염려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서요. 빛을 좇으면 뭐가 보이죠. 슬픔과 어둠이 생의 진실일 수도 있잖아요. 그걸 몰라서 그렇게 말하시는 거겠죠. 모르니까. 뭘 아세요, 뭘. 네가 뭘. 이 말은 하지 않았다.
"슬프고 어두운 것을 조심해라, 그 속에 가장 나쁜 것이 있다."
며칠째 같은 문장을 곱씹어본다.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의 인스타그램에서, 그 사람의 지인이 그 사람에게 무심한 듯 건넨 말, 이상하게도 싫지 않았다. 몇 년 전 어두운 걸 좋아한다는 나에게 마음을 내어준 사람의 걱정보다, 저 멀리 나와 아무 상관없는 이의, 차라리 익명에 가까운 목소리가 더 가깝게 들렸다. 이 말은 다시, 이렇게 들렸다.
"가장 나쁜 것이 있어, 네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에. 어떤 낭만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아닐 수도 있어."
누군가 나를 달랜다 해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떤 사람은 외려 어둠 속을 헤매는 사람을 비웃기도 하니까, 그런 사람에게 '네가 뭘 알아, 뭘.' 이라는 무기로 차갑게 응대하고 싶었는데. 그건 이미 무기가 될 수 없는 걸까, 힘이 빠졌다.
그래서 다시, 가장 나쁜 것은 무엇일까, 풀고 싶은 과제가 생겼다.
글 -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환영 (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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