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한국을 떠나는 날: 나 정미 아니에요. -1978년 3월-
서울역은 컸다.
사람이 많았고,
어른들은 빠르게 걸었다.
혜순은 줄곧 손을 꼭 쥐고 있던 아기를 안은 원장 옆을 따라갔다.
멀리 기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삐-익, 긴 기적.
한 어른이 다가와 원장에게 물었다.
“아이고, 부산에서부터 애들 데리고 오느라 고생했지요? 오랜만에 뵙네요. ”
원장은 고개를 숙이고 반갑게 인사했다.
파랑 투피스를 입은 여자는 혜순을 한 번 쓱 훑어보더니 말했다.
“8살? 얘는 꽤 큰 애가 가네.”
파랑투피스가 혜순에게 눈길을 주자 혜순의 가슴 속 어디서 ‘쿵’ 소리가 났다.
혜순은 순간 멈칫했다.
혹시 “너 이름이 뭐니?” 하고 묻는다면
‘정미요’라고 말해야 했다.
하지만, 파랑투피스는 묻지 않았다.
아무도 이름을 묻지 않았다.
이상했다.
이름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었을까?
그로부터 두 달 후 혜순은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은 넓었고, 낯설었다.
신기한 기계가 많았고,
금속으로 된 줄 사이를 지나가야 했다.
커다란 가방들이 움직이고,
낯선 말들이 들렸다.
혜순은 인형을 꼭 껴안았다.
정미의 공주 인형.
한쪽 귀에 검은 점이 있는 그 인형.
비행기를 타기 전,
파랑투피스 여자는 문서에 무언가를 썼다.
서류엔 알 수 없는 영어로 된 글자들 사이 한국어로 ‘김정미’라는 이름이 있었다.
순간, 혜순은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저, 사실…정미 아니에요.”
여자는 눈을 들어 혜순을 바라봤다.
말없이.
“저, 저는 혜순이에요. 정미는 내친구에요.
저는 고아 아니에요. 엄마 있어요.
이 인형도 제 거 아니에요…”
인형을 꼭 껴안고 있던 손이 조금씩 느슨해졌다.
“이거 안 가져도 돼요. 다시 줄게요.”
말을 다 하고 나니 배가 살짝 아팠다.
눈물이 나려는 걸 꼭 참았다.
여자는 잠시 말이 없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이 인형은 이제 네 거야.”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혜순을 데리고 탑승 게이트 쪽으로 걸어갔다.
비행기 안.
줄지어놓인 끝없이 놓인 아기 바구니들 .
작은 창문.
낯선 말들.
바구니 안에는
갓난아이처럼 보이는 아이들.
번호표가 가슴에 달려 있고,
작은 이불에 둘둘 싸인 채
울고 있었다.
“아기바다 같다…”
혜순은 중얼거렸다.
기내 전체에
작고 불안한 숨소리들이 퍼져 있었다.
혜순은 울고 있는 자기 옆자리의 아가를 토닥였다.
기체가 흔들리자
옆자리에서 아기 우유를 먹이던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정미. 비행기가 뜨려고 흔들리는거야.”
혜순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정미의 것이었던 인형을 꼭 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