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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큐 Jun 10. 2023

꽃과 시와 여름

그림 같은 시원한 여름이어라

미술관에서 시인이 될것 같은 여름이다.

여름은 땀을 흘리면서 땡볕에 조금 얼굴이 녹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봄에서 여름이 넘어가는 이 시즌이 나는 제일 좋다.

몸이 녹을때.....


미술관 냉방이 쎌 때도 있고 바깥 태양은 강렬하게 냉온조절이 적절히 필요한 이때!

그림과 문학의 만남.

이성자 화백의 그림과 미쉘뷔또르라는 프랑스 느보로망의 대문호와의 만남이

전시장에 걸려있어서

오늘은, 그 그림 조용히 바라보며 주말 연구자의 자세로 돌아와 보았다.


늘 같은 건물, 같은 전시지만,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기쁨.

같은 몸이라도 늘 다른 마음을 발견하는 놀라움.

시는 그렇게 우리를 웃게 하기도...문학과 미술과 음악의 콜라보는, 자연이 주는 힐링과 이웃할 만 하다.

이 주말이 심심하지 않게, 오늘은 미쉘뷔토르와 그 분의 그림 속에서! 여름을 보내보련다.

일상에 감사하며.

이성자화백의  그림

<잔가지>

되찾은 태양의 손길에 나는 서서히 모든 껍질을 터트립니다

숲 어귀에 와 있는 비단 가을에게 씨앗을 남겨 주면서

가지는 산비둘기의 비상처럼 가볍고, 줄기는 강물의 흐름처럼 부드럽습니다

나의 섬유질을 벗겨낸 폭풍에게 상처를 치료할 향유를 주면서

가지 밑으로는 거품처럼 덤불이 구르고, 모래같이 낙옆이 흩날립니다

나의 쾌락이자 나의 덫이 될 담쟁이 덩굴을 꿈꾸고 있습니다.

가지 잘린 자리마다 양식을 기다리는 입이 벌어지고, 꽃 맺힘마다 가쁜 숨소리가 들립니다


<싹>


나의 부드러운 재로 만들어 버릴 불꽃을 흉내내 봅니다

딱따구리는 단추 구멍에, 거미는 가슴 한복판에 달고 도마뱀은 싸인으로 붙이고 있습니다

모든 가지가 지평을 향하고, 작은 가지들은 지나가는 소음을 탐색 중입니다

내 줄기의 계곡을 따라 개미떼가 줄을 짓고, 다람쥐는 나의 겨드랑이에 보물을 저장합니다

몸을 틀 때마다 껍질 터지는 소리, 위로 치솟을 때마다 낡은 문 열리는 소리

껍질마다 차례로 이끼 카페트 치장을 합니다

꽃가루 날릴 때, 미풍에 귀기울이며 미래의 열매를 생각합니다



<나무 그늘에서>


숲 속의 숲, 풍요의 뿔 무리, 조정장치 다발과 무딘 칼 유리창

첫 번째 길목에는 트레일과 케이블, 두번째 길목에는 크랭크 알과 프로펠러, 세번째 길목에는 베틀과 수틀, 그리고 둥근 천정 아래에는 오르간과 취주대

첫 단에는 이끼 알파벳, 둘째 단에는 고대 룬어 음절

셋째 단에는 새싹 사전, 넷째 단에는 시선의 백과사전, 제일 윗단에는 숨결 전집

제일 높은 돛대 위에서 수부들이 노래하고. 밧줄에는 이끼가 흘러 내리며, 눈발이 선체의 첨예부에 달린 깃발을 때립니다

일증에는 땅 속에 사는 동물들과 버섯, 그 위에는 가시덩굴과 균열, 이 중에는 새 둥우리와 덩굴풀. 다락에는 온실과 구름

박쥐는 밤잠을 깨우고, 박새는 황홀하게 하며. 밀럽꾼은 내 가슴을 깨트리고, 나뭇꾼은 나를 측정합니다

천과 돛. 가지와 할대. 흔들림과 녹슬음. 씨앗과 천창


<나뭇잎>

해초와 자개의 나라에서처럼, 연옥에서처럼, 정지한 에메랄드 빛, 해류와 조가비. 춤추는 산호, 물방울 별

안테나와 풍향계 사이에는 꽃장식된 타원형 창, 천창, 꼬아 만든 회랑, 덧문과 기둥이 서 있는 발코니, 다락방과 담배합

아침부터 금전이 넘쳐 흘러 저녁에는 꺼져가는 아궁이에 도달하며, 간혹 밤은 달님을 흥정합니다

그림자 연극, 수술 달린 무대 막, 대기실에는 새싹들이, 촛대 다발, 어두운 불꽃, 휘장과 거울이 있는 객석,

검은 옥으로 촛대 받침을 한 샹들리에

모피의 터널, 진동하는 교차로, 여러갈래 입구, 난간의 소라고동 장식, 수액의 승강기 사이에 떠있는 공중 정원

회색 하늘 아래서 모든 것이 주석 빛입니다, 얼마 가지 못해 모두 납빛이 됩니다.

그 후엔 유황과 수은 빛이 감돌고 꺼져가는 희미한 불씨가 파닥거립니다

여기에 부엌을, 그 위에 욕실, 넓고 어질어진 거실, 먼 나라의 해먹, 가장 부드러운 해먹이 걸려 있는 침실이 생길 것입니다.

그리고 사방에 계단을 설치하고 망루 사이에 천문대를 둘 것입니다


<예언>

술과 방울이 달린 파라솔. 일렬로 늘어선 그네, 현악기 제조인의 바구니, 정령의 축제를 위하여 하늘에 펼쳐진 식탁

넓은 치마 폭 속에는 다리, 둥근 천장, 망사, 레이스 자수, 주름 잡은 리본. 금속 장식이 달린 끈.

살짝 뛰는 순간 이 모든 것이 다 날라가 버립니다

곡예단의 동물 우리와 당김줄. 밧줄과 공중 그네, 말갈기와 공중 곡예, 그물과 장대, 천막 극장은 곡예사와 뿌리를 내렸습니다.

유리 차양을 단 키오스크, 피리의 합주, 활과 심벌, 녹슬고 낡은 취주 악대, 높이 들린 지휘봉, 뒷걸음 쳐 도망가는 피아노, 하아프의 소나기

도시 전체를 화면에 담은 광고판, 가구, 옷가지, 구루마와 마차, 심지어는 공사장의 발판까지,

모두가 파편을 갉아 먹는 벌레들의 먹이가 되고 말 것입니다

거의 완벽한 첨묵의 회전 속에는 여러 장에 걸쳐 전개된 고뇌의 알레고리, 폭풍같은 글줄, 잉크를 가득 머금은 상형문자의 분출

나를 산산이 조각내는 벼락은 내가 계속 보낸 신호의 뒷면을 그려 보입니다



숲 이야기          

                                              미셀 뷔또르

       (1926~2016)     

비 오듯 지저귀는 밤꾀꼬리는

새벽 오는 길 위에 불평을 쏟아 놓습니다.

내 가지 사이로 부는 바람은

산울림 계단을 달립니다.

산의 혈액은 내 몸을 통하여

구름까지 닿고,

간혹, 내 껍질에 새겨 둘 말을 갖고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햇볕은 한 잎, 한 잎을 거쳐

내 깊은 상처까지 비추고,

내 뿌리는 암석을 더듬어 내려가서

둥지의 뿌리를 만납니다.

달님의 젖이 내 몸속을 흐르는 것이

느껴집니다 ……     

(참고) 이성자 선생님과 프랑스의 시인 미셀 뷔또르가 협업으로 남긴

   시화(詩畫) 작품이 많은 만큼, 금번 전시회의 주제가 이어서

   미셀 뷔또르의 시(), 숲 이야기를 낭송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시인이 누보로망 작가여서 다소 시가 난해할 수 있습니다.

 누보로망 : 작가가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순간적인 생각이나 기억을

   새로운 형식과 기교를 통해 재현하려는 문학기법임.


숲 어귀에서          

                                                    미셀 뷔또르

(1926~2016)          

계절 뒤의 계절, 한숨 뒤의 한 모금

폭풍 후의 포옹, 밤 지난 뒤의 이슬,

문득 벌 떼가 윙윙거리고

저녁 햇살에 꿀이 녹아 흐릅니다.

산토끼는 부지런히 지나갔고

멧돼지는 늦잠을 부리고 있으며

이제 노루가 지나갈 차례입니다.

돛은, 그림자 활대에 모두 접어 얹고

겨울 배는 닻을 내립니다.

내 바늘 입마다 바늘귀 같은

안개가 걸립니다.

송진 눈물을 흘리며

나는, 그대의 사랑을 축복합니다.

아주 가까이 샘터가

조금 떨어진 동굴의 빈터에 있습니다.     

(참고) 이성자 선생님과 프랑스의 시인 미셀 뷔또르가 협업으로 남긴

   시화(詩畫) 작품이 많은 만큼, 금번 전시회의 주제가 이어서

   미셀 뷔또르의 시(), 숲 이야기를 낭송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시인이 누보로망 작가여서 다소 시가 난해할 수 있습니다.

 누보로망 : 작가가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순간적인 생각이나 기억을

 새로운 형식과 기교를 통해 재현하려는 문학기법임.



올 여름 자연과 함께 좋은 기억들을 많이 담아보고 싶다.



주어진 환경에서 행복한 비법 #아침에 감사할 것 #감사일기 #손큐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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