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미술관 이근세 푸이
급 떠나고 싶지 않아요?
막 떠나고 싶다면
가까운 원주는 양평과 구리에서 한시간이다
나는 온갖 스트레스를 뒤로한채
원주로 달렸는데
선물같은 마음의 빙하가 두둥~~
물소리 새소리 거울의 반김이
우리를 너무반긴다.ㅣhttps://youtu.be/yn4k0wFjAy0?feature=shared
https://www.instagram.com/p/DKSL6SuB17f/
2025년 5월 30일 시계는 곧
2030년 5월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마지막 황제 푸이같은 펭귄
빙하에 가서 꼬마 푸이를 만나고 왔다.
마지막 황제 푸이!
빙하가 녹으면 저 마지막황제 처럼 꼬마 푸이 펭귄만이 남겠지 상상하는 이근세 작가의 코멘트!!
그리고! 인류세의 기억을 남기는
기억의 빙하 The glacier of remembrance
눈이 시릴 만큼 장엄했던 생명의 땅. <기억의 빙하>는 예정된 소멸 위에 펼쳐진 신기루다. 환영의 시공간을 표류하는 아기 팽귄 <푸이>의 안녕을 바라며...
<이근세 작가 노트>
빙하가 녹으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거야?
존재의 미학, 사라짐의 윤리 ― 이근세의 《기억의 빙하》 를 만나며! (손큐 글)
물위로 거울반사되듯 스테인레스빙하위로 물방울이 떨어지고 대자연의 아름다움이 물과 그 스틸반사형태와 태양빛과 바람 그리고 물을 흐르는 소리까지 모두가 다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바로 옆에 노골적인 펭귄이 뒤뚱거리는게 아니라, 어느 지붕위 생뚱맞게 펭귄 푸이는 있는듯 없는듯 조용히 그자리에 아주 존재감있게 에지있게 세련된 그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다가가고싶은데 쉽지않는 푸이는 도도한데 너무 귀여운 모습으로 인류에게 매우소중한 교훈을 암시하고 말았다.
“푸이, 그 조용한 혁명” —
이근세의 《기억의 빙하》를 걷다가 잔잔하고 오래갈 법한 행복감을 기억에 남긴다
스테인리스로 만든 빙하 위로 물방울 하나가 떨어진다.
햇빛이 번지고, 반사된 빛이 바닥에 그림자를 그린다.
바람이 지나가고, 관람객의 발걸음이 그 위를 스친다.
물방울은 또렷한 동심원을 만들고, 물의 움직임과 금속의 반사면은 마치 거울처럼 하늘을 되비춘다.
이근세의 《기억의 빙하》는 자연의 감각을 가장 인공적인 물질 위에 고요히 불러낸다.
그러나 그 순간, 관객은 깨닫는다.
무언가가 있다.
어느 지붕 위, 혹은 눈으로는 바로 포착되지 않는 어떤 에지(edge) 위에,
생뚱맞게 놓인 듯 조용히 존재하는 하나의 형상.
바로 푸이(Pu I). 꼬마 펭귄이다.
그는 뒤뚱거리지 않는다. 귀엽게 강요하지도 않는다.
도도하게, 그러나 너무나 귀엽게,
그 자리에 “있는 듯 없는 듯” 서 있다.
푸이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존재다. 그러나 쉽게 다가갈 수는 없다.
그는 보는 이를 슬며시 밀어내면서도, 동시에 기억의 중심으로 이끈다.
그 자태는 세련되었고, 절제되었으며,
동물적이기보다 조각적이다.
그의 존재감은 말이 없지만 묵직하다.
푸이는 어느새 인간 문명의 윤리적 거울이 된다.
그의 작고 고요한 몸짓은 묻는다.
“나는 여기 있는데, 당신은 어디에 있나요?”
“우리가 잃어버린 자연, 잊고 있던 생명들을 기억하고 있나요?”
《기억의 빙하》는 시끄럽지 않다.
그러나 강력한 공명을 남긴다.
푸이라는 작은 존재를 통해, 우리는 조용한 생명의 혁명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렇게, 물이 흐르고, 빛이 머물고, 바람이 지나간다.
그 모두가 한 조형의 표면 위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사라짐 이후의 예술
이근세는 '위대한 사라짐' 이후에도 남을 수 있는 예술을 묻는다.
《기억의 빙하》는 조형예술의 물질성과 기후 위기의 비물질성을 동시에 탐구하며,
기억-존재-환경을 하나의 축으로 연결하는 21세기형 생태미학이다.
그 안에서 푸이는 단지 조형물이 아니다.
생명 그 자체이며, 윤리적 시선이며, 우리가 지켜야 할 ‘존재의 얼굴’이다.
《기억의 빙하》를 건너는 마음에게
당신은 물 위에 서 본 적이 있나?
빙하 위 작은 발자국 하나, 푸이라는 이름을 가진 꼬마 펭귄이 서 있습니다.
그의 눈은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이 전시장의 공기를 천천히 바꿔놓습니다.
우리는 그의 눈을 빌려 잊고 있던 것을 다시 보게 됩니다.
얼어붙은 얼음 위에서 삶을 이어가던 북극곰,
바다를 길 삼아 노래하던 고래,
하얀 눈 속에서 옹기종기 모여 울던 펭귄들.
그 생명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이근세 작가의 《기억의 빙하》는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 사라지는 존재들에 대한 조용한 외침입니다.
빙하를 모티브로 한 거대한 금속 구조물은 마치 멈춘 시간 같고,
그 위에 선 푸이는 우리가 외면했던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기억하고 있나요? 당신은 사랑하고 있나요?”
푸이는 살아남은 아이입니다.
그러나 살아남았다는 말은 곧, 다수가 사라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는 홀로 서 있으나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안고 있습니다.
지구의 체온이 1.5도만 올라가도,
그 아이는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습니다.
이 작품은 단지 생태 위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얼마나 쉽게 잊고, 얼마나 천천히 반성하는지를 묻습니다.
그러면서도 묵묵히 희망의 얼굴을 빌려, 마지막까지 지켜보는 일을 택합니다.
전시장을 떠날 때, 마음에 조용한 빙하 하나 남기를 바랍니다.
그 위를 걷는 푸이처럼, 우리도 이 세상을 더 조심히, 더 느리게, 더 사랑하면서 지나가기를.
그 기억이 언젠가 다시 물이 되어 흐르기를.
그리고 마침내, 나는 푸이 앞에 선다.
그 작은 몸짓 하나에 담긴 세계의 무게를 느끼며,
나도 모르게 천천히 숨을 고른다.
이근세 작가의 조형은 나를 말없이 끌어당긴다.
어쩌면 인간이 잊고 있었던 감각,
시간보다 느린 생명의 박동,
소리보다 깊은 고요의 말이 여기 있었다.
대자연은 그저 위대하지 않다.
그것은 우리보다 훨씬 오래, 훨씬 멀리, 훨씬 깊은 존재였다.
푸이처럼, 아무 말 없이 그 자리를 지키며 살아왔던 모든 생명들에 대한 경외감이 밀려온다.
그 순간 나는 안다.
그동안 인생을 쏜살같이 달려 살아온
내 템포가 너무 빨랐다는 것을!
이제 나는 우주의 리듬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햇살이 번지고, 물이 흐르고, 바람이 머무는 그 속도에 맞추어
나도 조용히, 조심스럽게 발을 디뎌보고 싶다.
이근세의 《기억의 빙하》는 거대한 예술이 아니다.
그것은 아주 조용한 진심이자, 내 안에 남겨진 작은 혁명이다.
오늘 이 전시를 기억하며, 나는 다짐한다.
다시 자연과 보조를 맞추는 삶.
그리고 푸이처럼, 말없이도 깊은 존재가 되고 싶은 마음.
참고 키워드 정리
생태미학(Eco-aesthetics)
기억의 미학(Aesthetics of Remembrance)
생명윤리와 예술
기후위기와 예술의 응답
ESG와 공공예술의 사회적 책임
비인간존재(non-human subject)의 주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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