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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자각몬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김치의 맛

내 친구가 담아준 김치의 맛

by 손큐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던 김치 맛을 보아봤는가?


나는 45년간 먹은 김치중에 가장 맛있는 김치를 얼마전 친구의 선물로 받아 먹어보았다.

너무 깊고 맛있는, 성숙한 맛이었다.

시어머니 김치도 먹을만하다 생각했지만, 이 친구의 김치에는 뭔가 깊은 오묘한 맛이 스며들어 있었다.

친구에게 김치 선물을 받는 것 자체도 처음있는 일이라 감동적이고 감사했지만, 맛이 정말 오랫동안 내 뇌리를 감싸안았기에 여러가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림그리던 친구였는데 여리여리하니 이쁘기만 하고, 허영심 부리며 살지 않았을까? 싶고 유리공주는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의 이쁘장한 동창 친구였는데 25년만에 만나 어느새 안정적이고 성숙한 엄마로 살아가고 있었다. 동창회를 통해서 바로 이웃에 친구가 살고 있었음에 반갑고 기뻤다. 서울살이하면서 힘들었을텐데 반가운 마음에 소중하게 생각한 김치 한통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닌가?

색도 향도 너무 제대로인 김치! 맛은 너무나 오랜 여운이 남는 깊은 맛이었다.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예술적인 맛이 그 김치에서 났다! 그림그리던 걔 맞나?


이쁘게 그림그리던 친구가 다 큰 아들 둘이나 낳고 살림을 잘 살고 있는것도 신기한데 심지어 깊은 김치의 맛을 낸다는것은 내겐 지극히 센세이셔널한 일이었다. 사느라 늘 김치한번 깊게 담구지 못하고, 살림살이 깔끔하게 하고 다니기는 커녕, 아이가 있지도 않으면서 늘 살림은 젬병이었던 나에게, 일도 하고 아이도 낳고 김치도 담구면서 남편도 사랑하는 친구의 모습은 그 맛있는 김치맛과 함께 오래가는 여운이자 애인처럼 설레이는 간만의 인생선물같은 일이었다.


너무나 신기해서 어떻게 만들었냐고 물어보았다. 예쁜 내 친구는 나지막하게 말한다. "이 김치 육수를 내려고 몇번이나 작업하는거야"라고 시작했는데 들어보니 더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양념들처럼 쏟아져 나왔다. 아빠가 사업에 실패하고 나서 시골가서 배추농사를 지었다고. 그리고 손으로 하나하나 유기농으로 길러놓은 그 채소들로 직접 몇백 포기씩 씻고, 양념을 만들고, 육수를 만들어 정성껏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덧붙였다.


"음식은 정말 정직해..

좀만 한눈 팔아도 맛이 달라져버리니

하지만 넘 신경쓰고 하는것보다는 정성들여 무심하게 하는게 맛있어.

음식은 사랑이고 인생이더라" 라고 한다


아들내미 둘에게 끼니때마다 맛있는 찌게를 끓여주고 신랑에게도 밥한끼 만큼은 매끼 직접 차려주려 애쓰는 친구 모습을 보면서, 수십년간 아무리 혼을 내도 되지 않는 내 생활패턴을 바꿔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친구의 김치에 영감을 받아 나도 무우 다섯포기를 사고 부추를 사고 오이를 사서 깍뚝썰고 청량고추가루 넣어 레시피대로 만들어보았다. 생애최초의 김치를 담구고는 한 일주일을 몸살을 했던 나는 김치 후유증을 톡톡히 치른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만큼의 여운은 오래 남는다.

일찌감치 친정엄마가 돌아가셨던 나는 살아갈 수록 너무 습관적으로 아쉬운점이 한두개가 아니었다.

그냥 서러워도 엄마가 없어서...슬퍼도..삶이 나를 서운하게 해도, 몸이 아파도, 뭐든 안좋을땐 엄마가 없으니까, 엄마같은 바다같은 안정감이 내겐 없으니까 하면서, 자기위로를 글로라도 하고 블로그라도하고, 문화기획이라도하면서 내면의 깊은 슬픔의 바다들을 한번씩 파도타기 하듯이 넘기고 넘기고 살아왔던 것 같다.


무심코 먹은 이 음식은 고향 엄마가 만들어준 김치맛, 엄마만 할 수 있을것 같은 깊은 맛, 그 맛이 났다.

맛있음을 말할 것도 없지만, 고향 엄마의 마음, 엄마의 존재, 엄마만이 할 수 있는 요술의 맛! 그맛이 내친구 김치에게 스며들어있었다. 그래서인지 여운이 오래간다고 하는 내 말에, 친구는 쉽게 오픈하지 않은 속내를 넌지시 알려주었다.


"내 김치의 깊은속 이야기 같은건데..

그 김치! 아빠가 가꾸고 있는 땅에서 첨부터 끝까지 직접 하는거야. 몇년전 내가 매입한 시골 버려진 땅에서~

황혼기에 망하게 됐을때, 심한 자책감에 수면제, 항우울증약 복용...이러다 아빠 돌아가시겠다싶어서

내어놓은 처방이 농사일에 관심 있어했던것이 기억나 딸래미가 벌인일...

도심 근처 가까운, 형편에 맞는 저렴한 땅을 구입하다보니 돌이 많은 땅 매입하게 됐고...

아빠는 몇년 동안 농사지을 땅 만든다고 돌골라내고 골라낸 돌로 돌담을 쌓고,

돌이 가득했던 땅이 농사를 지어도 될 땅이 되었고...

고추, 가지, 오이, 부추, 파, 깻잎, 상추, 무우, 배추, 감, 옥수수, 대추, 살구 등 온갖 야채와 나무가 자라고 열매맺고..

번뇌를 잊기위함으로 가꾼 땅이지만 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값는다는 마음으로 갖꾼 땅~

잘 가꾸어 땅값 올려준다는 생각! 아빠가 현재 할수 있는 고마움의 표현이겠지...

정서껏 키운 농작물들은 동네에서도 잘키우고 맛있다고 소문나고..

한번씩 시골가면 농장물을 한가득 차가 헐떡일 정도로 가져온다.

딸 준다고 야채 키워 건조시켜 보관했다가 내가 가면 한보따리 내놓는다.

이렇게 키웠다는걸 알기에 너무 많아도 거절할수 없다.

이 많은 농작물 소진을 위해 생각한 것이 몸에 좋은 건강한 육수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

육수재료로 말린 가지, 토란, 호박, 무우, 배추무시래기, 파뿌리 등

여기에 멸치와 다시마를 더 넣어 우려내어 모든 음식에 육수로 쓴다.

김치할때 이 육수에 밀가루풀 풀어 김치담근다.

이러니 음식이 안맛있을수 없다.

요리를 못해도 맛있어진다. 정성가득한 기본재료가 좋으니까!

이 재료들로 만든 김장김치는 늘 맛있다고 그것도 아주 맛있다고 더 줄수는 없냐고, 극찬을 듣는다.

맛의 비결은 기본 재료의 정성과 그 정성을 알고 그 재료로 음식을 정성껏 만든 사람의 또 정성이지.

이 김치는 이 음식은 정성이며 말하지않고 전하는 사랑의 표현이며 가족들의 고뇌와 번뇌와 승화가 묻어나는 인생이지 않을까싶다...."

아... 그랬구나...

그래서 보통 그냥 김치는 아니었던게 맞구나.

맛을 속일 수가 없는거였어.

내 친구가 준 이 김치는 온갖 화려한것과 바꿀수없는 소중한 내 보물이다.

살아있는 이야기가 그대로, 우리내 인생의 맛이 그대로 스며들어었는 내 친구 김치에, 깊은 인생의 맛이 우러나 내 삶도 이런 김치 맛 볼 수 있어서 너무너무 감사하다.

다시 만나서 너무 기쁘다.

니 김치 오래오래 맛보고 살자!

아무것하고도 바꿀 수없는 이야기 알려줘서 고마워! 내 친구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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