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지협 Jan 05. 2024

오랜만에 마주한 할머니 눈물


5일 만에 할머니와 영상 통화를 했다. 할머니는 여전히 말씀은 못하셨지만 눈을 마주치는 그 순간 표정이 변하더니 얼굴 전체에 울그락 붉그락 변하다 금세 눈물을 보이셨다. 그러고는 계속 고개를 좌우로 심하게 내 저었다. 그런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를 일이었다. 할머니가 나를 머리로는 기억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가슴으로는 기억하고 있다는 게 분명했으니까...! 다만 할머니의 인지가 돌아오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로 할머니가 인지가 돌아오는 순간부터 슬픔과 절망에 못 견뎌하실 분이라는 걸 가족들은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게 두렵고 걱정이 됐었다. 


 인지가 돌아온 건 아니었으나 상황에 대한 인식은 어느 정도 하시는 게 아닐까 싶었다. 말도 행동도 전혀 표현하진 못했지만 우린 할머니의 눈빛과 표정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두렵고 무섭고 불안하고 속상하고 서글프고 미안하고 절망적인 그 마음을 말이다... 강하게 내젓는 고갯짓으로도 충분히 느껴졌다. 그래서 할머니가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어느 정도는 가늠됐었다. 



 '아이고 내가 어쩌다, 살아서, 왜 이런 꼴을 하고서, 다들 힘들게 하는지... 아이고... ' 손을 자유자재로 움직이셨더라면 아마 가슴을 큰소리가 날 정도로 탁. 탁. 탁. 치셨을 것이다. 이렇게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할머니는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거나 폐를 끼치는 행위를 하는 걸 염려하셨고 뇌출혈이 오기 전에도 여기저기 관절이 쑤시고 성한 곳이 별로 없으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뭐든 해내려는 분이셨다. 


 함께 같이 살자는 말을 해도, (도와줄 사람 하나 없으니 혼자 생활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아픈 몸으로 견뎌내 온 시간이었으나 이제는 몸마저 성치 않으니 혼자 생활할 수 없는 지경이므로) '이젠 모든 게 끝났다'는 듯이 강하게 부정을 하시는 것 같았다. 



 그런 할머니가 휠체어가 없이는 움직일 수 없었고 침대에서 생활해야 하며, 그토록 돈 많이 든다고 잠시라도 누워있을 생각을 하지 않는 할머니가 병원을 벗어날 수 없는 상태인 건 절망 그 자체인 셈이다. 



나이 들면 다 아파요. 그러니까 
속상해하지 맙시다. 
할머니만 아픈 거 아니에요...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면 아마 세상 떠나라고 울부짖을 것 같이 속상함이 가득 담긴 눈망울과 아주 크게 벌린 입. 할머니의 표정을 자꾸 보다 보면...  아마도 내게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가 슬픔에 빠져 한없이 내 눈을 바라보고 울음보를 터트린다면 이렇게 가슴이 메어질까 싶었다. 

 할머니는 어린 날의 내겐 늘 굳건했고 무서웠던 호랑이 할머니였다. 내가 스무 살을 넘어서야 할머니가 꽃을 좋아하고 여린 여자라는 걸 알게 됐고 그녀에게 꽃할머니라는 애칭을 지어줬었다. 


할머니는 내겐 꽃할매가 되었다. 내가 결혼할 무렵쯤부터 할머니는 고맙다는 말도, 눈물도 자주 보이셨던, 그냥 소녀감성을 가진 분이셨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런 할머니가 이젠 아이처럼 내 앞에서 세상의 모든 슬픔을 보여주셨다. 


할머니는 내게 우주와 같다. 


 할머니는 아픈 병실에서 겨우 정신을 깬 무의식과 같은 상태로 의료원에서 내게 간호받는 마지막 날 갑자기 병실 내 사람들이 다 들을 정도로 "내가 남자 아기 있는 거 봤다~" 얘기하시던 걸 보면. 아마도 내가 엄마가 됐음을 간절히 원하셨던 건 분명했다. 어쩌면 우리가 아직 말하지 않은 나의 시누이가 낳은 아들을 꿈속에서(?) 보신 것인지 모르겠지만... 


 결혼 4년 차인 부부이자 아무것도 쉽사리 할 수 없는 입장인 내게 아이, 임신에 대해 말한다면 "할머니 때문"이라는 이유나 변명이 아니라 "나 때문"이었다. 는 걸 이제야 알게 됐다. 부모가 될 여유나 생각이 없을 정도로 할머니는 내 삶에서 나보다 중요한 사람이니까 말이다. 내가 곤란하고 힘들고 어려울 때 내게 기꺼이 [변명]이 되고, [방패]가 되고, [발판]이 되어 주셨다. 다른 사람 입장에서 먼저 생각했던 나와는 다르게 언제나 할머니는 내 편에 서서 나를 위해 목소리를 높여 주셨고 옆에서 늘 도와주셨다. 


 그런 할머니를 내가 함부로 포기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그녀를 위해 살아갈 생각이다. 할머니도 세상 무너질 듯한 괴로움의 늪에서 벗어나 조금이나마 안정을 취하고 안심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 사는 날까지 부디 괴롭고 아프고 속상한 일 따위는 없으시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꽃할매인생일기 #꽃할매 #조랑말손녀 #할머니생각 #손녀일기 #할머니추억 #할머니눈물 #뇌출혈환자 #뇌경색환자 #환자가족 #현타 #상황파악 #콧줄





매거진의 이전글 고개 끄덕임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