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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지협 Jan 07. 2024

가까운 듯 가깝지 않다고 느꼈던

우리가 바라봤던 불통의 시간 8분

할머니와 일주일에 한 번 허용된 만남의 시간. 주말 아침의 가장 중요한 일과가 됐다. 보통 일요일마다 봤던 할머니였는데 이번 주에는 토요일이었다. 모처럼 반가운 얼굴 사촌동생의 방문이 있었던 이유에서였는데.


커튼을 펼치는 소리를 폰 너머의 할머니께 전하지 않기 위해 잠시 음소거를 켰던 걸, 대화가 끝날 무렵에 비로소 알게 됐다. 그나마 동생이 이상한 직감을 느꼈는지 언급해 준 덕분이었다... 


아, 아쉬워... 내가 왜 그랬을까... 그냥 버튼 누르지 말 걸 그랬나. 


영상통화가 끝난 핸드폰 화면을 한 참 쳐다봤다. 속상함이 밀물처럼 쓸려 내 맘을 혼란스럽게 했다... 자책의 시간으로 오전을 보내주고, 오후엔 새로운 일정을 위해 찾아보는 시간으로, 다시 방황하다 하루가 지나가 버렸다. 분명 어젯밤에는 오롯이 주어지는 주말의 시간에 대한 계획이 확고했는데 말이다. 


그나마 오늘 이상하게도 모자이크로 변환된 할머니의 모습이 89%를 차지했기 때문에... 음소거가 아니더라도 소통은 힘들었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 아주 짧은 위안이 됐긴 했지만. 


가까운 듯 가깝지 않다고 느꼈던 건 처음이었다. 


영상통화는 320km의 거리 무난하게 넘길 수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현대문명의 산물이라고 확신했었는데, 모자이크 처리가 된 영상통화 화면만 바라보고 있던 나, 그리고 들리지 않는 화면에다 계속 일방적인 이야기를 하던 이모, 물끄러미 바라보다 자꾸만 눈을 감던 할머니의 모습. 


할머니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자꾸만 이래 저래 바꿔 보던 화면 너머, 자꾸 붕어처럼 입만 벙긋거리는 내 모습이 이해도 안 되고, 어떤 이야기를 할지 어떤 목소리일지 얼마나 궁금하셨을까?


지금 이 글을 적으면서, 할머니의 입장과 오늘 나의 입장이 유사해서,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는 그런 바람이 들기까지 했다. 


기억을 잃어가고 있을지도 모를 할머니의 머릿속에 나란 존재를 10분간 실낱같은 시간일지라도 내 목소리를 들려드리고 얼굴을 보여 드려서 잊히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에... 더 속상했던 이번 영상통화. 


어처구니없는 내 실수로 지나간 영상통화의 기회... 후회해 봤자 의미 없는 시간인 걸 알고 있지만,


영상통화가 마치 만난 것처럼 느끼게 해 줄 거라고! 우리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고, 벽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해 온 그동안의 착각이 오늘 이후로 깨지게 된 것 같다. 


벽. 거리. 우리에겐 있었다. 바꿀 수 없는 현실이기에 다만 나는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그리고 나는 그걸 마주하는 할머니의 생각과 마음가짐에 대해 헤아려 보려 하지 못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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