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과 아픔이 더해지는 계절

by 차지협

a. 겨울소녀


하얀 풍경 속으로 서서히 물들어가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창가에 내려앉은 눈꽃을 지긋이 바라보던 그녀는 찬바람이 두렵지 않다고 내게 말했다. 오로지 그녀의 관심은 하얀 풍경이었다.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모르겠으나, 단지 나는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그곳을 향해 달려가는 그녀의 뒷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신비로운 소녀, 그녀의 이름을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언젠가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다시 그녀를 만날 수 있을 거란 예감이 들곤 한다. 에메랄드 빛의 머리카락 색깔을 가진 만큼 그녀는 겨울과 닮았다. 하얀 풍경마저 얼어붙게 하는 무색함.


애써 밖으로 뛰쳐나가는 그녀를 그때 붙잡았더라면 어땠을까?


b. 푸른 꽃


"온데 안 아픈 데가 없네"
"만날 아프다고 하노"
"네가 내 나이 되면 그런 소리가 절로 나올 기다"


왜 다들 나이가 들면 모두

아프고

늙고

쉽게 서러워지는 걸까?


처음에는 아프다고 관심받고

싶어 하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는 건

그녀의 다리에 핀

푸른 꽃을 발견했을 때부터였다.


할머니 다리를 휘어 감듯이

피부를 장악하는 핏줄 위로

피워 나는 꽃

향기하나 없는 그 꽃은

가슴을 쿡,

휘어 감는다.


c. 등잔 밑이 가장 어둡다


당최 꿈이 없어 그런지 꿈꾼 적 없는 내게

급습적으로 찾아온

'꿈'이라는 녀석은 많이 슬프더라


현실에서 본 적 없는 너희들 사이에서

눈총 받으며 쫓겨나야 했던 것보다

왜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냐는 사실이

서러웠던 거야


꿈에서 깬 후 계속 흘러내리던 눈물

꿈속이라서 안도하기보다는

서러워서...


꿈이 사라진 상황에서도,

영문도 모르겠던 상황인데도,


지금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넌,
내 편이 되어 줄거니?


배고프면 들춰보는 냉장고 안을

오늘도 무심히 보다 발견한

구석에 드리워진 어둠의 그림자


하나 꺼내 뚜껑을 들춰보니

하얀 곰팡이가 뚜껑만 한 크기의

솜덩이로 한 지붕을 만들고서

나를 올려보고 있더라

매거진의 이전글하고 싶은 말은 많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