츤데레 할머니의 다정다감한 손녀 독립
내가 엄마 뱃속에서 자라는 순간에도, 태어나서 세상을 처음 바라볼 때도, 그리고 커가는 모든 순간에 할머니가 함께 했었다.
내게 있어 할머니는 그 정도로 내게 아주 소중하고 의미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 나이 또래의 친구들이 티비, 가수, 배우, 연예인, 예능 프로그램 이야기를 할 정도로 나는 할머니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했다.
이런 내가 얼마나 재미없고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인지는 어느 정도 가늠했을 거라 예상된다. 그건 커가면서 느끼게 되는 현실이었다. 집에서 티비를 보거나 컴퓨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시간은 학창 시절의 내게 매우 부족했었다. 거의 고갈의 수준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아주 가끔씩 몰래 띄엄띄엄 보는 정도였달까.
6.25 전쟁을 겪은 세대 셔서 그런지 아님 아버지가 부담하실 관리비가 걱정돼서 그런 건지 그게 아니면 전기를 아끼는 게 몸에 베이셔서 그런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부지런한 사람이라 그러신 건지 이유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어쩌면 이 모든 예측이 해당사항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결론적으로 나는,
우리 집에서는 전기를 아껴야 했고, 일찍 자야만 했다.
낄낄빠빠보다 못하게 무리 안에서 스스로 입에 지퍼를 달고 투명인간처럼 눈치를 보게 되는 사람이 돼 버렸다. 사회생활을 할 필요가 없는 현재 서른을 훌쩍 넘긴 내 나이에서 보면 그때 어떻게 살았나 싶기도 하고, 무슨 재미로, 그냥 살아갔구나 싶다. 꿈을 키워야 할 나이에 심장이 뛸 새 없이 '그냥'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내가 크게 하고 싶은 게 없는 건 그냥 그 자리를 맴돌고 있어서일까?
할머니는 계획을 하는 것도 실천을 하는 것도 막막하고 답답한 내가 좀 더 수월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늘 알려주고 밀어주고 당겨주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땐 할머니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내가 처한 상황이나 현실이 뭐가 됐든... 할머니가 내겐 핑계였고 방패였고, 수단이자 이유였다. 할머니는 내게 뭐든지 해주셨다 그게 아니란 걸 이미 알면서도 나를 위해 기꺼이 그렇게 해주셨다.
지금에서야 조금 철이 드는 건지, 미안한 마음이 자꾸 싹을 틔워 울음으로 터져 나오곤 한다.
할머니의 말소리도 생각도 들을 수 없고 알 수 없는 지금은 무척 불안하다. 마치 신호가 없는 횡단보도 위를 걷는 아이처럼 말이다...
할머니는 언제부터 나 혼자 심부름을 보내곤 했다. 다리가 아프셔서 함께 다니는 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몸이 불편하셨던 것 같다. 내가 전화를 10통 가까이했는데... 짜증 섞인 말투로 일찍 들어오라는 말보다 점점 선택의 폭을 넓혔고, 내 선택에 맡겨 칭찬을 해주곤 하셨다.
내 선택을 90% 이상 존중해 주셨고, '잘했네, 잘 샀네, 이젠 다 컸네, 참 잘 고르네, 아이고 이 무거운 걸 다 들고 오느라 고생 많았네...' 하면서 현관문 입구에서 기다리셨다 번쩍 장바구니를 들어다 가져가 주시던 할머니.
항상 트집이라고 여길 정도로 아니었던 별로였던 내 선택을 대하는 할머니의 태도가 언제부턴가 달라졌었다.
꼼꼼한 할머니의 안목의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치는 게 뻔할 텐데도 할머니는 내게 늘 칭찬해 주셨고 고마워했다.
잔소리에서 칭찬이 될 때, 그때 알았어야 했다.
할머니는 이미 준비하고 계셨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혼자 살아갈 힘과 선택하고 실행해야 하는 순간이 내게 찾아올 거라는 것을. 그래서 할머니는 내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독립을 시키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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