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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지협 Feb 07. 2024

언제나 반겨주던 할머니가 이젠 그곳에 없다

집에 가면 언제든 만날 수 있고 볼 수 있었던,


연말이 되면 생각이 더 많아진다. 잘 보지 못하는 가족들을 위해 뭘 해줄 수 있을지, 쉽게 연락하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안부 인사를 건넬까? 그런 행복한 고민이 있었던 연말. 


이번 연말을 맞이하는 나의 태도는 조금 달라졌다. 내 삶의 일부를 정리하는 일, 할머니를 통해 나는 조금 나를 비워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 darestaton, 출처 Unsplash


여전히 마트를 가거나 온라인으로 물건을 구입할 때도 장바구니를 가득 채우며 예상했던 지출을 배로 넘기고 냉장고나 창고의 빈자리를 보는 게 드물 정도로 여분을 중시 여기는 편이나, 


이 또한 나를 괴롭히고 힘들 게 한다는 걸 재료를 손질할 때나 음식 할 때 가장 절실히 느끼는 편이다. 


© srosinger3997, 출처 Unsplash


가만히 바라보는 집안 구석구석 잡동사니들이 싸여만 가고 있다. 매정하게 비워내는 게 힘들어 매해 계속 쌓거나 빈자리를 찾아 쑤셔 넣어 왔는데... 깔끔한 성격의 소유자지만 넓은 아량으로 안아주는 신랑 덕분에 아주 튀어나올 지경에 이르렀다. 


보다 못한 내가 치우기는 하지만 이 또한 한계가 있고 마음을 다 잡고 여러 날을 잡고 진행해야 하기에 쉽지 않다는 걸 정리를 시작하기 전부터 예감하게 되는 일이다.  


그래서 만사를 제치고 짧게나마 글로 남기는 대신 과감하게 책도 종이도 물건도 하나씩 정리해 보기로 한다. 아마 내년 연초가 되어서도 할머니 물건은 아마도 풀어보기 힘들 것 같지만 말이다. 사실 내 것만 해도 뭐 그리 많은지... 볼 때마다 답답하긴 하다. 


그 덕분에 할머니가 머물던 공간은 아주 많이 세월의 흔적을 많이 덜어냈다. 짐을 나눠 가져왔고, 버려졌고, 지워져서 90%의 빈 공간을 만들어 낸 셈이다. 할머니가 머물던 그곳에 다시 방문하는 게 무척 힘든 일인지 알기 때문에 아무도 쉽사리 방문하려 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는 감정이다. 


우리는 먼저 이야기하지 않았고, 마무리를 아빠에게 맡긴 게 내심 죄송스러워, 어렵게 물어보는 질문에 아빠조차 성급히 도망치시기 일쑤였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명절, 연휴, 내려갈 때마다 가장 우선으로 방문했고 가장 오래 머물었던 그곳. 항상 찾아가면 반갑게 맞아주고 챙겨주고 안아줬던 할머니와 함께 했던 추억의 향기가 가득한 공간. 어린 시절부터 보냈던 일상이 머물고 있어 그리운 첫사랑 같은 그런 애틋한 장소. 


할머니가 없음에, 우리는 갈 곳이 없었다. 우리가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연말계획하던 중에 이제는 할머니집에 갈 수 없다는 걸 이야기할 때 무척 쓸쓸하게 느끼고 있음을 우리는 서로 인지하고 있었다. 말없이 흘러 보낸 침묵의 10초... 수긍이었다. 


할머니가 있을 때 느끼지 못했던 사실. 혼자 계시는 할머니를 챙겨야만 한다는 책임감과 의무에서 움직였던 행동으로 할머니를 좀 더 살갑고 다정하고 세심하게 살펴보지 못했었다. 할머니가 있음에 우리가 편했다는 것도. 할머니가 우리를 위해 더 오래 더 많이 그 자리를 기다리고 지켜내고 있었다는 것도...  


© fromitaly,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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