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지협 May 18. 2022

기억을 잃는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나 참으로 무서운 일이었다

그동안 내 주변에선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크게 변화가 없는 건 나였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변하고 싶지 않았다.


어릴 적에 겪었던 엄마와의 이별에 대해 무척이나 담담했었으나... 지나고 보면 그땐 내가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기도 전에 가족들이 나 모르게 애써주고 모두 채워주고 있었기 때문에 담담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여전히 나는 달라지고 있는 것들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때 견뎌냈어야 했었고 깨달아야 했던 이별의 무게. 그때보다 더 많이 크게 느낄 수밖에 없는 이별에 대해 마주해야 할 순간이 찾아올 것을 미리 두려워하고 있다. 


누군가 그랬다.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만남보다 이별과 익숙해지게 된다고.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과의 만남보다 오랜 시간 옆에서 함께한 사람들과의 이별이야말로 얼마나 슬프고 잔인한 것인지...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일 것이다. 


누군가도 그랬다. 사람이 만나면 헤어지게 된다고. 삶이라는 건 애꿎고도 얄궂다.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힘든 것.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인생인 만큼 우리는 알게 모르게 수많은 인연들과의 만남을 가지며 시간 속에서 잃어가며 남아있는 이들을 바라보게 된다. 특히 가족은 언제부터 옆에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가까이에 있었으나... 우리는 그들이 흰머리를 보일 적에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어쩌면 추억을 함께 쌓은 만큼 더 힘들어질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두 번 다시는 안 올 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번은 허용되지 않은 인생이라는 드라마를 우리가 어떻게 잘 이끌어갈지는 우리의 몫일 것이다. 단막극이 될지 장극이 될지는 모를 우리들의 인생이지만... 추억이라도 있음을 감사히 여길 날이 오지 않을까. 끝까지 함께하지 못하는 것으로부터 느끼는 슬픔과 서글픔에 대한 고통과 아픔이 무서워서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후회를 함께 회피할 생각이라면 얼마나 스스로가 더 못났게 느껴질까...


지금도 역시 할머니의 작은 행동에 울게 되고 가슴을 쓸게 된다. 몇 번을 글을 적으려다 못내 쉽게 쓰질 못했었다. 오늘에라도 남기고 싶었다. 나중에 어떤 날을 맞이하게 되더라도 나는 그때도 사랑하며, 그리워하며,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고 있었음을...  




운 좋게도 6일간의 방문요양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었던 할머니는 새롭게 받은 심사로 인해 요양등급이 하나 내려가면서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다. 방문요양이 아닌 어른들의 유치원으로 불리는 '노인주야간복지센터'였다. 


"더 이상 살기 싫다. 너희에게 괜히 짐만 되고..."

8개월 전에 갑자기 할머니는 이런 말을 했다. 


그냥 외로워서 관심받으려 꺼내는 말이라고 아이들의 투정처럼 생각해버렸다. 다행히 생계에 치여 거의 한 달에 한두 번씩 할머니를 봐드리러 갔던 이모가 할머니의 증세를 눈여겨보더니 정신의학과에 모셔갔었다. 할머니가 1~2년 전부터 도통 잠을 못 주무셨던 것이었다. 불면증, 우울증, 불안의 복합적인 증세로 인해 견디기 힘드셨던 것.   


나는 아침저녁으로 간단히 통화하는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걱정 끼치고 싶어 하지 않는 할머니의 작은 배려심이었던 건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어쩌면 할머니와 나 사이에 큰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워낙 깔끔하고 섬세한 할머니는 몸이 불편하셨기 때문에 시설요양서비스보다 방문요양서비스가 적당하다는 판단하에 방문요양서비스를 2년 넘게 이용해오셨는데... 매일 3시간이었다. 그 이외의 시간은 할머니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팔도 다리도 불편하셨던 터라 취미활동이 어려우셨기 때문에 단지 티브이만 보고 보내셨을 무료한 시간. 그리고 코로나에 걸리실까 봐 나가지 않을 것을 요구했던 나의 일방적인 배려의 말들...


그게 문제였던 것일까... 할머니의 노화는 비슷한 연세의 분들에 비해 좀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걸 최근에 인식하게 되었다. 우울해하시며 더 이상 집에 있고 싶어 하지 않는 할머니는 주야간센터로 옮기게 되었다. 


'요양원보다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할머니의 호전된 상태를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몇 년 새 달라진 할머니의 행동들이 며칠 전부터 보이기 시작했고 쉽사리 호전하진 않았었다. 


초기 치매 증상으로 여겨지는 할머니의 오랜 습관들은 여전히 헷갈리게 만들었다. 하루의 목적 달성을 위한 고집과 억지.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현관문을 몇 번 들낙거리며 챙기던 소지품... 무엇을 찾으러 갔는지도 까먹는 할머니의 깜박증. 사람들 속에서 돋보이고 싶으면서도 나약해 보이지 않으려 다른 사람들을 평하게 되는 모습. 걱정 끼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해 내 보이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거짓말들. 


진짜 기억을 잊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하기 싫은 의지로 인해 기억 일부분을 스스로 지워버리는 것일까. 


어디까지가 진짜인 걸까? 잘 살펴보면 이유 없는 행동은 없었다. 어린 날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남들이라면 이해하지 못할 습관들과 행동들이 나는 80% 이상은 이해하고 있었고, 나로 인해 악화된 게 아닐까 싶어 가슴 졸이고 있다. 다행히 할머니는 센터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해 지내고 계신다. 센터 생활로 인해해야 할 일들이 많아져 피곤하다는 말도 하시긴 하지만 말이다. 

그중에서도 질문에 대해 회피하는 모습이 보이셨다. 적당한 단어를 찾아내기 힘들어 설명이 더 길어졌고, 산만해진 탓에 우왕좌왕하게 이야기를 늘어놓기 일수셨다. 나는 그렇게 할머니와의 통화를 할 때면 대화 사이에서의 숨바꼭질을 이어가곤 했다. 술래를 찾지 못할 적엔 숨어있는 깍두기들을 찾아 수소문해서 물어보곤 한다. 다소 번거로울 수 있는 일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인하고 해결하기 위해 그렇게라도 움직여야만 한다. 


할머니가 센터에 나가시게 되면서, 나는 아이를 학교에 보낸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어떤 하루가 될지 궁금했다. 할머니가 전화가 없으면 늘 잘 지내고 계신지 궁금한 마음으로 일상을 보내게 됐다. 대부분 별일들이 왔고 지나갔었다. 더 이상의 악화가 없으시길 바라며 오늘도 무리 없이 행복한 시간이셨길 바랄 뿐이다.   


힘겨운 인생이셨을 것이나, 나로 인해 더 이상은
외롭지 않고 애쓰지 않는 인생이 되시길 바라고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할머니의 운동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