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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지협 May 23. 2023

함께 힘들 수 없다면 행복하면 안 되는 거 아닐까?

당신이 힘든 시간, 나도 함께 힘들어야만 해야 할 것 같아

꽃할머니와 나는 항상 함께였다. 일하거나 공부하는 시간, 친구를 만나는 시간 이외는 거의 함께였을 정도로 서로 껌딱지처럼 동네에서도 소문난 사이였다. 그게 당연하다고만 여겨왔었는데... 머리가 커져가면서 나는 할머니로부터 분리되는 걸 가끔 누리고 싶어 했다. 그게 바로 할머니의 안전망을 벗어나 친구와 보내는 꿀 같은 시간이었는데... 그게 아주 가끔은 마치 빙판길을 걷는 듯이 불안할 때가 있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에도 아주 미비하게 불안했던 그 감정이 폭발하던 때가 왔다. 내적 진동이었음에 거대한 쓰나미처럼 말이다. 이후 평소 몸이 편찮으시던 동래할머니의 안 좋은 소식을 듣게 됐었고, 왠지 아픈 사람을 두고 잠시라도 행복하거나 웃거나 기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는 감정에 사로잡히게 됐다. 마치 징크스가 된 것처럼. 그래서 최대한 기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누군가가 아프고 힘들 때... 온전히 그 순간 함께하지 못하지 못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슬픈 계기판이 되어 있을 테니까.


단, 내 슬픔의 맨홀에 누군가는 빠져들지 않도록 웃음은 지켜줘야 했다. 그래서 나는 웃고 있어도 웃으면 스스로를 다그쳐야 하는 시간을 조용히 견뎌내야만 한다. 혼자 있을 때는 슬픈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면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고 소리를 입 밖으로 낼 수 있었지만... 짝꿍이 옆에 있을 적에는 그의 기분까지 수렁을 빠뜨릴 수가 없었다. 그는 쉽게 내 기분에 동요되는 사람이라 보기보다 더 유리처럼 섬세하게 다뤄야만 했다. 오늘도 역시 영화를 한참보다 스크린과 분리되어 현실과 영화사이의 괴리감을 순간 느껴버렸다.


'또 시작이네...' 불안하면서도 또 뭇내 담담히 스크린을 마주해야 했다. 영화관람하는 동안은 현실을 잊고 즐길 수 있는 행복한 취미라고 칭했던 짝꿍의 가치관을 존중해야만 했기에... 즐거울 수 있는 시간 속에서 즐겁지 않기 위한 노력은 참으로도 고난도 미션수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해야만 했다. 보거나 듣는 사람마저 썩 유쾌하지 않을 수 있는 이런 스스로를 향한 고문 같은 시간은 어쩌면 지금 이 순간도 엄청난 고통을 작은 육체로 겨우 견뎌내고 있을 대단한 생명체를 위한 배려이자 응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테다. 


이모네 가족과 할머니를 모시고서 처음으로 다 같이 봤던 신기한 영화... 갤럭시 오브 가디언즈 vol2, 6년의 시간을 지나 올해 vol3편이 나왔다. 아무래도 함께 봤던 도통 복잡 미묘하면서 이상해 보이셨을지도 모를 영화를 다시 보니 할머니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던 건 당연한 일처럼 여겨졌다. 


할머니를 졸라서 밋밋한 일상에 변화를 주려했던 젊은 날의 나를 따라 할머니는 "그래 가자~ 가보자!"며 흔쾌히 따라나서 주셨다. 무슨 영화인줄도 모르고서... 단지 내 선택에 맡겨주셨다. 재밌고 유쾌한 걸 좋아하셨는데... 제일 기억에 남는 최악의 영화가 바로 부산행이다. 좀비들이 스크린 밖으로 나올 것 같은 영화를 보는 할머니의 표정은 엄청나게 굳어있었고, 유일하게 할머니께 등짝 스매싱을 맞았던 영화이자 할머니가 주무시지 않았던 영화 중 하나였다. 



언제부턴가 영화관에 오면 계속 잠들어버리는
할머니의 모습에 깨우다가 지쳐 놔두곤 했는데... 
피곤에 쓰러져 할머니야말로 안쓰럽게
바라보지 못했던 철없는 손녀였습니다. 

영화 보는 것보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여주는 것.
그냥 함께 하는 그 자체가
좋으셨던 것 할머니.

헐레벌떡 상영시간에 맞춰
영화 보러 손잡고 영화관으로 가던
시간이 참으로 그립습니다. 



할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것. 할머니를 기쁘게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 중이네요. 할머니 다음에 뵈러 갈 때는 "나, 이거하고 싶어. 나, 이거 먹고 싶어. 우리 담에 이거 하자. 이렇게 꼭 얘기해 주세요. 아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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