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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지협 Jun 09. 2023

문득 머리 감다가 할머니 생각이 났어요


벌써 시간이 한 달 하고도 보름이 지나가네요... 이모가 잠시 딸이 살고 있는 집에 다녀온 것 같아요. 매 주말마다 할머니 뵈러 다녀와서 소식을 전해주셨었는데, 이번주에는 그러지 못했어서 궁금해 병원에 전화를 걸어봤었네요. 하필 근래 계속 비소식이라 3일 내내 흐리고 비 오고 그래서 더 걱정이 됩니다.


비 오고 흐리면 할머니 관절이 어떻게 그리도 날씨를 잘 예측하던지 3일 전부터 쑤신다 아프다 하시잖아요? 저도 할머니와 같은 건지... 3일 전부터 몸살기운이 이미 날씨를 예측하고 있었나 봅니다.


병원에 연락해 기저귀가 모자라진 않는지... 할머니 상태는 어떠신지 여쭤봤었는데... 기저귀폐기값이 따로 드는 상황을 그제야 알게 됐었어요. 할머니 기저귀는 모자라지 않을지 배려하고 챙기는 마음에서 꺼낸 얘기인데, 혹시나 심기를 건드는 도돌이표 말이 아니었을지 전화를 끊고 나니 괜히 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약속시간이 다 돼가네요. 급하게 머리를 감았어요. 그 짧은 시간 동안에서도 할머니가 떠오릅니다.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샴푸 댕기머리... 같이 목욕 다닐 때 일회용 샴푸 한 두 장 꺼내놓으면 할머니의 밝은 표정을 볼 수 있었지요. 은은한 한방냄새를 좋아하셨던 건지, 아님 두피까지 개운하고 시원해지는 기분이 좋으셨던 건지...


할머니의 행복한 표정을 못 보는 것 같아 속상하네요. 우리 다시는 같이 목욕 갈 순 없을까요? 목욕을 참 좋아하던 할머니. 그날의 일이 있기 3일 전부터 제게... "너희 이번에 내려오면 같이 꼭 온천 가자. 알겠지?" 그렇게 신신당부하시면서 설레하시던 목소리를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흰머리가 자라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사진으로 볼 때마다, 늘 흰머리가 자랄 때면 머리가 간지럽다고 염색해야 한다며 제게 염색을 해달라거나 미용실로 발길을 재촉했던 할머니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머리가 간지러워도 스스로 머리를 감을 수도 만질 수도 없는 할머니. 할머니의 불편함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병원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자체만으로도 죄송스럽고 속상합니다. 그래도 할머니 얼굴이 편해 보인다는 이모의 말 한마디에 불편하고 무거운 마음을 잠시 내려놓습니다.


쇼쿠지. 일본여행. 생각만 하고서 다음으로 미뤄왔던 게 어찌나 후회가 되던지... 이래서 미루지 말라고 하는가 봐요.


할머니! 빨리 기적처럼 회복해서
우리 같이 목욕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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