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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지협 Jun 09. 2023

밥은 챙겨 먹었니? 불현듯 전화하시던 할머니


밥 한국인 밥심으로 살아가는데,


특히 할머니에겐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으로 생각해서 어느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챙겨드셨던 그 밥. 요즘은 밥대신 콧줄로 캔 두 개의 미숫가루와 같은 음료로 식사 중이시겠죠...


먹고 힘내야지, 먹고살아야지! 하시면서


주섬주섬 밥 먹기 전에는 건강음료라며 브로콜리, 사과, 우유와 갈아주시거나 제가 좋아하는 리얼 바나나 우유를 만들어주시기도 하고, 밥 먹고 나서는 과일이나 과자 등 뭐라도 더 챙겨주시려던 할머니. 이렇게 먹는 걸 좋아하고 챙기시던 할머니가 요즘은 마시면 끝이나 마찬가지인 영양음료가 무슨 식사가 될까 싶어 마음이 무겁습니다.

밥. 할머니와 같이 지내던 시절에는 고마운 줄 모르고 한상 푸짐하게 만들어주시던 음식들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단지 수저만 챙기고 올려놓고 후다닥 먹고 떠나버리곤 했던 학창 시절. 직장인시절을 지나 결혼 후에서야 그게 얼마나 사랑 없이는 어렵고 귀찮고 힘든 과정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가족들 먹일 생각에 요리하는 게 행복이에요." 그런 말을 듣는 게 신기한 게 바로 저입니다. 누군가 제 음식을 먹어주고 맛있다고 해주면 장보기, 조리, 요리, 설거지까지의 과정이 모두 신나고 즐거운 건 아니더라고요... 뭐, 조리요리만 한다거나... 설거지만 한다면 몰라도요...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할머니로 살아낸다는 것. 위대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한 건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할머니를 보면서... 30대 중반에 할아버지를 여의고 3 자매와 함께 세상을 헤쳐가야만 했던 한 여자가 억지 부리고 억척스럽게 굴어야만 잡초처럼 살아갈 수 있었던 그 시절을 이해하지 못했었기에... 다그치고 외면하면서 다른 사람 편에 섰던 적이 태반이었습니다. 할머니의 소중함을 모르고서 할머니 옆에만 있었던 그 시절이 너무 허무맹랑하게 지나가버린 것 같아요.


"점심은? 밥 챙겨 먹었니? 정~ 밥 먹기 싫으면 달걀프라이 하나해서 김이랑 먹거라." 

어르신유치원으로 불리는 주간센터에 다니신 지 7개월 무렵 점심시간 이후 주어지는 개인휴식시간에 시집보낸 손녀가 점심 안 챙겨 먹고 바짝 마를까 봐 걱정돼 전화해서 넌지시 말을 건네시던 3일째 되던 날 할머니가 갑자기 쓰러져 뇌출혈 판명을 받았었지요.


저는 아침저녁 전화 때나 연락하면 되는데, 다 큰 어른인데 뭘 그리 걱정하시나, 늘 귀찮은 듯 굴었어요. 그 고마운 마음을 이제야 느낍니다.


왜 다들 옆에 있을 때 잘하라고 하는지... 언제까지나 그 모습 그대로 평생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는지... 멍청한 손녀는 이제야 압니다. 할머니가 그토록 착하고 예쁘고 똑똑한 손녀라고 자랑스럽게 여겨주셨는데 말이죠. 죄송하고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반성문 같은 일기를 오늘도 이만 마무리할게요.


시간을 돌리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할머니 그때로 돌아가면 정말 문 닫고서 제 방에 들어가 버리는 모습은 안 보여 드릴 수 있을 텐데... 미안해요 할머니 같이 있어도 외롭게 해 드린 것 같네요. 이토록 떨어져 있어도 밥걱정해 주시는 내편 1호 할머니... 감사합니다. 얼른 건강하게 다시 지내봅시다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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