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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화백 Oct 04. 2022

나를 직면하는 작업

나를 소개하기



앙케이트 [프랑스어] enquête : 사람들의 의견을 조사하기 위하여 같은 질문을 여러 사람에게 물어 회답을 구함. 또는 그런 조사 방법 _규범 표기는 ‘앙케트’


  어렸을 때 유행하던 앙케이트라는게 있었다. 그 당시 노트 한 권에 '우리끼리 앙케이트', 또는 '백문백답' 이런 제목으로 친구들끼리 돌려가며 답을 적는 놀이(?)였는데 유독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그 안에는 1번 "내 이름은?"으로 시작해서 "좋아하는 음식은?" "좋아하는 색깔은?" 등의 너에 대 얄팍하지만 모든 정보를 걸 캐고 싶다는 의지가 보이는 질문들이 가득했다. 그때부터 나는 나에 대해 누군가 질문해주는 것과 나 스스로 답하는 걸 꽤나 즐겼던 것 같다.


나의 사회적 역할을 정의하는 단어들을 나열해 보는 것은 중학교 시절 이후부터 꾸준하게 한 번씩 주어지던 과제였다. 아마도 기억하지 못할 뿐 초등시절에도 그러한 단원이 있었을 수도 있다.

현재 내가 맡고 있는 위치와 역할 등을 정의하기란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리 어렵지 않은 작업이다.

일단 과거의 나는 학생이자 한 가정의 딸이고 누군가의 친구, 그 이상은 조금 더 머리를 굴려보자면 학급의 부반장이었거나 미술동아리의 회원 정도였을까.


 현재의 나는 일단 어느 병원의 봉직의로 활동 중이고 한 가정에서는 두 아이의 엄마, 그리고 남편에게는 배우자, 또 한가정에서는 딸, 또 다른 가정에서는 며느리,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친구 또는 지인으로써 활동 중이기도 하다. 또 결코 작지 않은, 어처구니없지만 큰 소망으로는 그림 그리는 화백과 글 쓰는 작가의 욕심도 있는 사람이다.(이렇게 지저분한 형용사의 나열인 이유는 아마도 상당히 쑥스럽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나를 정의해보고자 하는 질문하는 작업은 보통은 갑자기 시간이 많아질 때, 또는 그와 맞물려 날이 선선할 때 찾아온다. 대게 이것저것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나날의 연속이면 괜스레 앞으로 내 인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할 것만 같고, 현재 위치를 재정비해야 할 것만 같은데 이는 나를 가만히 두지 못하는 성격 탓이다.


 일이 년간 육아를 앞세워 적당히 놀고 적당히 일하며 적당하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아오던 생활은 접고 올초부터는 새로운 직장에서 풀타임으로 일을 시작했었다. (나는 육아에 너무도 큰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었다.) 너무도 바쁘게 달려오다 날이 선선해지니 직장에서 여유가 조금 생겨 또다시 고질병이 도졌다. 갑자기 내 현재 위치를 다잡고 싶어 진다. 이미 수차례 다잡아서 그만 다잡아도 되지만 그냥 병인 것 같다.  평생 마음만 다잡다 끝날 것 같지만 나란 인간은 자신을 여러 번 독려하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것 같아 보인다.


 사회 안에서의 나를 정의하는 것과 나라는 인간을 정의하는 것은 또 다른 작업이다. 나라는 개체를 알기 위한 쉬운 방법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것들이지만 항상 나는 생각하고 싶고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싶다. 안물 안궁 앙케이트다.


 나는 자기 계발서를 좋아한다. 정확히는 자기 계발서를 사는 것을 더 좋아한다. 누군가는 독서를 할 때 자기 계발서는 절대 읽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난 반대다. 물론 자기 계발서를 너무 사랑하지만 사실 책 한 권을 읽었다고 해서 자기 계발이 하루아침에 이루어 질리도 만무하고 실천능력 여부는 또 다른 문제이므로 내가 자기 계발서를 좋아한다고 해서 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는 미지수다.


 그리고 나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다시 정확히는 그림 그리고 있는 동안의 시간을 즐긴다. 아무 생각 없이 손끝을 휘저어 정신 차려보면 어떤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 주는 평온함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결과물이 훌륭하지는 않으나 행위 자체를 즐길 뿐이다.


 요즘은 고양이에 빠저 있다. 어릴 때부터 개와 언제나 함께 생활해 와서 지금까지 고양이의 매력을 느껴보지 못했으나 나이가 드니 그렇게 고양이가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는 아직까지는 막연한 나만의 외사랑이고 동경이라 언젠가 꼭 한번 함께 생활해보고픈 열망이 있다.


싫어하는 것을 생각해 보자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벌레. 단순히 그 집요한 느낌을 주는 가느다란 다리들이 가득한 형태와 생각보다 작고 빠른 움직임이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 같다.


리고 반 농담처럼 친구들과 이야기 하지만 나는 노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건 나 또한 나이 들수록 편협해지는 나의 시선과 편견이 만들어낸 것이지만 나이 든 사람들의 오만과 특유의 대화법들이 점점 더 싫다.

이건 나 역시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의 모순적 표현 아닐까 싶긴 하다.


또 이건 싫어한다기보다는 피하고 싶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만 어떤 그룹에서든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 나 스스로도 그 이유를 바로 알아채지 못하는 그 어떤 역정이 난다. 다만 그 순간에는 단순히 짜증으로 표현되어 이유를 알기가 어렵지만 나중에 찬찬히 생각해 보면 인정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구나 싶을 때가 많다.


현재 2022년의 나, 30대 끝자락에 서있는 나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어 보고 주절거려 보았다.  40대의 나는 어떤 또 다른 역할과 다양한 관심거리를 갖고 있을까.

내가 좋아라 하던 유년시절의 '앙케이트'들을 지금 발견해서 읽어본다면 재미있을 텐데 나라는 사람은 예전 물건 버리기를 서슴지 않아서 초등시절 일기장도 다 버려버렸다. 지금 이 순간 조금 아까운 생각이 든다. 뭐 곧 잊어버리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사진으로 나를 직면하는건 쉽지 않아 사진속 내 크기는 점점 작아진다. 곧 점이 될 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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