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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화백 Oct 13. 2022

택시 안에서 방귀 냄새가 날 때

우리 사이 어색해지지 않기를

  

  나의 출근길 담당은 8할이 택시이고 나머지가 버스다. 

사실 처음 현재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는 "갈아타지 않고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어!" 라며 만족스러워했다. 그런데 그 버스는 빨강버스다. 타요에서는 '가니'라는 이름을 가진 배차간격이 보통은 20분-25분 정도 되는 광역버스인 것이다. 


생각이 깊을 필요까지는 없고 그저 자주와 주면 좋겠다.



하필이면 이날도 내가 버스 정류장에 거의 도달했을 때 조용하고 생각이 깊은 가니가 마침, 불과 1분 전, 이미, 막 지나간 사실을 알았으므로 (네이버 지도로 매일 검색해보는 버스 운행정보)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다분히 변명임을 알고 있지만 나는 자기 합리화 대장으로써의 마땅한 역할 수행을 해냈다. 

지금 막 지나갔으니 최소 20분은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다. 보통은 근무 시작 최소 30-40분 전에는 가있는 걸 좋아해서 일찍 출발하기 때문에 아침에 그만큼 시간적 여유가 없진 않았지만 요즘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20분을 야외에 오도카니 서있다간 감기로 고생하다 온 가족에게 다 옮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면 작고 귀여운 나의 아이들이 고생할지 모르는 가능성은 미연에 방지해야 했다.


이런 식으로 주 5일 중 4일은 택시를 이용하지만 마치 예외적인 아침의 갑작스러운 이벤트인 듯 

'어이쿠, 오늘은 안타깝게 됐군..' 하며 카카오 택시 어플을 '하는 수 없이' 열었다. 

그렇게 핸드폰을 보면서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때마침 '빈차' 불이 들어온 '나의' 택시가 신호에 따라 내 앞에서 대기 중인 장면을 목격했다. 보통은 카카오 택시를 불러도 평균 4분 정도(운나쁘면 8분까지도)는 대기를 하게 되는데 4분을 또 절약해줄 빈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니 아침 일진이 좋은 날인 것 같았다. 

기분 좋게 탑승했다.


"안녕하세요~" 인사도 야무지게 했다.  "좋은 아침입니다"까지 할 뻔한 텐션이었지만 참았다.

"OO역 쪽으로 가주세요."


"어느 길로 가드릴까요?" 

기사님이 물었다. 


사실 보통은 묻지 않고 '알아서 빠른 길로' 가주시기를 바라지만 아침 기분이가 나쁘지 않으니 상냥하게 대답했다.


"동부간선 타고 가주시면 되세요."

"네 손님이 잘 알고 바로 말씀해주시니 좋네요." 기사님은 친절했다. 


"출근하시는 건가요?"

"네, 맞아요."

"늦게 출근하시네요"

"네. 헤헷."


대화가 생각보다 길어졌다. 그리고는 바로 이어폰을 귀에 꽂았고 여기까진 우리 둘의 관계가 수월하게 유지되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구수한 냄새가 풍긴다. 그것은 아주 진.. 하게 뒷좌석을 무겁고 느리게 장악했다. 일단 나의 오늘 장상태는 큰 문제가 없었으니 범인은 이 밀실 안에 있는 또 다른 한 사람뿐이다. 하지만 오늘 나는 기분 좋은 아침이었고 친절하신 기사님이라 우리의 관계를 깨고 싶지는 않았다. 


날씨가 추워져 요즘 자주 코를 훌쩍이는데 마침 코가 간질 하고 콧물이 흐르는 느낌이 났다. 그렇지만 지금 훌쩍이면 마치 내가 냄새 때문에 킁킁 댄다고 생각하실 것 같아 참았다. 그러면 민망해하실 테니까. 

냄새는 꽤나 진중했다. 쉽사리 흩어지지 않았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코로 숨을 쉬지 않고 입으로 쉬어볼까 했지만 어렸을 때 읽었던 어느 만화책에서 '우리가 냄새를 맡는 것은 미세한 냄새 분자가 내 코 점막에 달라붙기 때문'이라는 설명과 함께 화장실에서 날리는 똥 분자들이 코에 붙는 그림이 생각났다. 정확히 똥에 날개가 달려 공기 중을 날아다니는 그림이었다. 방귀 분자가 코에 붙는 것도 싫은데 그것들을 굳이 입안으로 안내해서 붙이기는 더욱 싫어서 숨 쉬는 방법을 달리 하지는 않기로 했다.


물론 만화에서처럼 똥 분자가 코 점막에 붙어 후각 신호전달을 하게 되는 것이 단순하게 똥덩어리가 코에 묻는 것과는 다른 것이라는 걸 분명히 배워 알고는 있지만 어린 시절의 단편적인 이미지 각인이 이렇게나 무서운 것이다. 

어쨌든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고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기사님은 차고지가 방학동이고, 오늘은 새벽 4시부터 근무를 시작했으며, 강남에서 여의도를 거쳐 이곳으로 온 것이고, 이 주변 공사가 너무 길어지고 있어 복잡하며, 이 동네에는 태울 손님이 없는 편인데 지금 시간은 출근시간이 지났으니 다시 멀리 나가야겠다.. 고 하셨다. 

분명 내 귀에는 행여나 가려지지 않도록 귀 뒤로 머리카락을 정돈한 채 하얗고 동그란 이어폰이 꽂혀 있었고 기사님께서 말씀하신 내용들이 나에게 비록 아주 많이, 크게, 엄-청 궁금했던 사안은 아니었지만 성실하게 적절한 웃음과 함께 대답해 드렸다. 


"다 왔습니다. 오늘 좋은 하루 되세요~"

"네 감사합니다~."


마지막까지 친절하신 기사님이다. 


택시에서 내려 차갑고 상쾌한 공기를 한 껏 크게 들이마셨다.

그분이 오늘 잠시라도 행여나 민망해하셨거나 우리 사이가 어색하게 마무리되지 않아 참 다행이었다. 



요즘 이어폰은 쓸데없이 너무 작다. 버튼을 누르면 훅 커지는 기능이 있으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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