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동유럽 이야기
자그레브에서 렌터카를 몰고 플리트비체로 이동했다.
생애 첫 해외 운전.
사실 크로아티아는 우리나라와 도로교통과 운전자들의 습성이 매우 유사하고 고속도로나 해안도로에 차가 많이 없어서 시내만 조심하면 별 무리 없다고 한다. 게다가 나는 운전을 좋아하는 편이다. (문제는 걷거나, 뛰거나, 자전거 타기를 더 좋아하는 것뿐)
우리가 미리 예약해 둔 폭스바겐 골프! 여기서는 정말 가장 흔한 차 중에 하나다. 물론 흔한 차라는 건 그만큼 가성비나 인지도가 좋다는 뜻이다. 유명한 자국 브랜드의 차가 없는 크로아티아에서는 대부분 외제차를 탄다. (당연히!) 그래서 전 세계의 다양한 차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물론, 나만 재밌었다.)
그러다 한국차를 만나면 괜히 반갑고, 운전 중에도 괜히 추월하지 않고 따라갔다. (참고로 크로아티아 고속도로는 거의 대부분의 차들이 130~150킬로로 달린다) 그런데 그만 날이 너무 좋다 보니, 게다가 우리가 빌린 차는 불과 6천 킬로밖에 달리지 않은 아주 쌩쌩한 놈이어서 나도 모르게 내 인생 최대 속도인 170킬로를 밟기도 했다.
그러다가,,
또 문득 나의 멘토이신 아빠의 말씀이 생각났다.
"조금 빨리 가려다가 엄청 빨리 가는 수가 있다."
... 서프라이즈. ㅋㅋ
나중에는 오히려 더 넉넉히 주위를 둘러보며 느긋하게 운전했다.
드디어 플리트비체 바로 근처의 에어비엔비 숙소에 도착했는데, 진짜 이런 집에서 하루라도 묵을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게 느껴질 만큼 숙소가 아담하고 예뻤다.
마치 우리나라의 예쁜 펜션을 연상시켰는데, 에어비엔비가 있기 훨씬 전부터도 이 지역에는 민박이 발달했다고 한다. 빨간 지붕의 집들과 아기자기한 가드닝을 구경하며 국립공원으로 갈 채비를 했다.
'플리트비체 국립호수공원'
이 곳은 언덕과 호수와 절벽, 그리고 수많은 폭포들이 숲을 이루며 장엄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고, 크로아티아를 수려한 자연의 나라로 불리게 만드는 큰 공헌을 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워낙 하이킹과 자연을 좋아하는 우리는, 잔뜩 기대하는 마음으로 공원을 올랐다.
이 대 자연을 나의 하찮은 수식어로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저 찍은 사진들로 그때의 기분을 누리고자 한다. (물론 사진을 잘 찍은 것도 아니지만,)
나는 산을 참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산을 좋아하신 아버지를 따라 매주 국내의 산들을 정복하곤 했다. 날 좋으면 캠핑도 했고, 날이 흐릴 때면 동내 뒷산이라도 올랐다. 산에서 늘 마음을 다스리셨던 아버지.
자연이 주는 자유로움을 벗 삼아, 가장으로써의 책임감을 잠시 내려놓으셨을 거다. 한 걸음, 한 걸음 숲에 몸을 맡기며 삶의 부담을 산바람 속에 날려버리셨을 거다. 그 순간만큼은 아버지가 참 자유롭고, 더 대단하고 멋져 보였다.
그리고, 산을 오르며 그 자유로웠던 아버지와 참 많은 대화를 했다. 어렸을 땐 어린 대로, 또 나이가 들면서는 나이가 든 만큼의 깊이로 대화를 했다. 늘 한결같은 산. 산에 있으면 아버지가 생각나고, 아버지를 보면 산이 생각난다.
지금도 내가 가장 가고 싶은 여행지는 히말라야와 몽블랑, 알프스다. 꼭대기에 오르는 그런 등반이 아니어도 좋다. 아니, 그런 목적이 있는 등반이 아닌 그저 대자연을 누려보고만 싶다.
아버지도 늘 말씀하셨다. 산은 정복하는 게 아니라고, 산을 오르면서 마음을 정복해야 한다고 하셨다. 아니, 때로는 그런 부담도 떨쳐버리고 걱정 근심 모두 산에 두고 오라 하셨다.
크로아티아의 수려한 국립공원 앞에서 아버지가 생각난다.
여행이란 이런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