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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괴물 Aug 27. 2016

자전거라 쓰고, 낭만이라 읽는다.

브롬톤 이야기

몇 해 전까지 로드 자전거를 탔었다.
인적이 드문 새벽시간, 한강을 찾아 거침없이 페달을 밟으며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사실 스트레스라기보단, 자전거 그 자체가 나에겐 큰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너무 앞만 보고 달렸던 지난 몇 년 동안 그저 쌩쌩 속력만 내다보니,
아름다운 풍경들을 못 보고 지나칠 때가 많았고,
불현듯 그저 느리게 걷고 싶어 졌다. 뭐, 자전거도 자전거지만 내 인생이 그랬다.

이렇게 문득 변덕이 생겨 로드 자전거를 팔고 작은 접이식 자전거로 바꾸게 되었다.
전속력이 아니더라도 어디든 달릴 수 있도록.
도시도. 골목도. 시골길도. 강변도 모두 느낄 수 있도록.

그러면서 만난 녀석이 바로 "브롬톤"이다.
브롬톤 중에서도 깔끔한 모델과 색상.
바가 스포티한 일자형이고, 군더더기 없는 2e 모델에 레이싱 그린 색상. "레이싱 그린"이라니. 이 얼마나 낭만적인 이름이던가. 초록이면 초록인데, 경주하는 초록은 그야말로 시적 표현이 아닌가.
그 초록의 이름을 듣자마자 돈을 모으기 시작했던 것 같다.
 
게다가,
결혼을 하면 꼭 부부가 같이 브롬톤을 탔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바랬었는데.
마침 자전거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와이프를 만나게 되는 축복을 누리며,
결혼 혼수로 커플 브롬톤을 질러버리게 된다.

그렇게 커플 브롬톤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서울 브롬톤 데이트 중, 광화문 어딘가에서.


이 브롬톤이란 녀석은 뭐 다양한 장점이 있겠지만,
일단 예쁘다. 아름다운 곡선 하며, 가죽을 살짝 두르게 된다 치면 치명적인 클래식함이 드러난다.
앞뒤로 가방과 안장을 달아놓으면, 그게 또 멋이 되고, 정장에도 어울리며, 스포티한 복장에도 어울리는 그런 多색의 매력이 있다.

나는 종종 출퇴근을 브롬톤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날씨가 너무 좋거나, 너무 일찍 깨어났거나,
그냥 가끔씩 녀석이 보챈다고 느껴질 때면 두 시간 왕복 거리를 종종 자전거로 출근했다.

사무실 책상 옆, 자출의 흔적.
출근 할 때 꼭 건너게 되는 마포대교에서 한 컷.

나는 자전거가 너무 좋다.
이 글의 주인공은 브롬톤이지만, 브롬톤이 아니라도 세상 모든 자전거를 사랑한다.
줄곧 친구들에게 자전거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늘.
"자전거라 쓰고 낭만이라 읽는다."는 표어를 주입시키곤 한다.

내 근육이 힘이 동력으로 정직하게 전달되는 그 움직임에 대한 친밀성.
걷거나 뛰기만 해서는 느끼지 못할 적당하고 쾌적한 바람.
오토바이나 자동차로는 절대 넘보지 못할 잔잔한 아날로그 감성.
그저 자전거와 함께 집 밖을 나서기만 해도 세상이 3배 정도 아름답게 보이는 미적 최면 효과.
집안에 자전거를 진열해 두기만 해도 유지되는 청춘과 낭만의 냉장보관 효과. 등등
자전거의 장점을 말하자면 끝이 있으랴.

언젠가는 작은 자전거 샵을 차려서,
정말 사람들에게 "자전거 타는 행복"을 알려주는 게 작은 소망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무언가를 위해 일한다는 건 큰 행복이기에
꿈꿔볼 수 있는 소망이 아닌가 싶다.

너무 더운 오늘,, 자전거는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거실 한켠에 잘 진열되어있지만,
이 글을 쓰고 나니 늦은 밤 와이프를 꼬셔서, 동네라도 잠깐 달려야만 할 것 같다.
자전거를 타는 것이 아니고, 낭만 위에 올라타는 축복을 누리며.

자전거를 즐기는 와이프와 산다는 건 큰 축복이다.
여의도 ifc에서.
 한강 캠핑을 하며.
자전거를 타고 삼청동을 많이 누볐다. 우리는 서울도심 데이트를 좋아한다.
자전거를 타는 여인의 뒷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서울 야경 투어를 하며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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