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괴물 Aug 27. 2016

서점에서 휴가 보내기

일상의 기록

나에게 남아있는 올해 마지막 휴가 3일을 남겨두고,
오늘은 서점으로 뛰쳐나왔다.
이미 읽고 있는 책들이 있어서 책을 사러 간 건 아니고, 그저 서점의 공기를 느끼고 싶었다.
여유롭디 여유로운 그곳의 공기.
지식의 공기, 감성의 공기, 활자가 주는 가능성과 설렘의 공기.

예전부터 서점 안에 있는 카페에만 앉으면 불현듯 글이 쓰고 싶어 졌다.
그곳에서 글을 쓰면 이상하게 글 쓰기가 더 재미있게 느껴졌고 나의 구름 같은 글쓰기가 좀 차분해지는 느낌이었다.

수많은 작가들의 기운이 느껴져서일까.


요즘은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많이 읽는 편인데,
마침 서점에 있는 '화제의 에세이' 코너에 가봤더니 글 잘 쓰는 사람들의 감성적인 글들이 잔뜩 진열되어 있었다.
주로 독자들을 위로하는 글과 삶을 사랑하라는 권유의 책들.


내가 글을 쓰게 된다면 어떤 글이 나올까.
괜히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에 빠져봤다.

위로의 글쓰기는 많이 쓰면 오글거리기 마련이고, (가끔 곁들여 줘야 맛이지) 사랑이야기를 쓰자니 결혼을 해버렸고, (괜히 과거 이야기를 솔직히 했다가 분위기 어색해질 수 있다) 인문학을 풀어내자니 지식이 짧고, 비즈니스 경험을 살리자니 도통 내 스타일이 아니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자전거와 여행을 섞어 내야 하나 생각하며 김훈 아저씨 같은 깊이 있는 글은 무리니, 더 젊고 유머러스한 글을 써야겠다는 허무맹랑한 즐거운 상상을 한다.
왜,, 뭐,, 상상은 자유니깐.
마침 사람 없는 오전에 서점에 왔고, 따뜻한 커피도 맛있고, 에어컨도 빵빵해서 기분이 좋았나 보다.


6년 만에 SNS 공간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게 참 재미있다.
어렸을 때부터 읽고 쓰는 걸 참 좋아했었는데,
그걸 풀어낼 공간이 있다는 게 새삼 반가웠다.


에버노트에 적어놓은 글들은 너무 무겁고 깊어서,
마치 그런 숙성된 글이 아니면 아무것도 적을 수 없었던 지난 몇 년.
내가 좋아하는 일상의 끄적거림도 못하게 되어버린 서른두 살의 어느 날이었다.
그냥 세상 많은 것들 앞에서 움츠려 들었던 그런 시간.


첫 직장에서는 남들이 시키는 일만 하느라
자유의지가 어디론가 도망쳐 버린 것 같은 느낌으로 3년을 살았고,

직장을 나와 새롭게 시작한 스타트업에서는
젊음의 패기를 온전히 회사에 바치며 거침없는 3년을 보냈다.


물론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 지난날의 모든 삶을 사랑하지만,
이제야 되찾게 된 자유의지와 끄적거림의 즐거움이 너무 반가운 나머지 푸념이 나올 뿐.


대형 서점의 꽉 들어찬 수많은 책들을 보며,,
나도 언젠가는 서점의 어느 한 구석,
내 비루한 글들이 엮인 책이 어딘가에 꽂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심으로.
읽어주는 이 하나 없더라도, 어쩌다 읽게 된 단 한 명이라도 내 글을 공감해 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라도 글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내가 늘 동경해왔던 글 쓰는 사람.


우연히 천사 같은 누군가가 이런 깊이 없는 내 글을 읽고, 자기는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릴 테니, 거기에 맞는 글을 써달라고, 그래서 공동으로 책을 내 보자는 그런 천사 같은 제안을 준다면,
당장 회사를 때려치우고,,(대표님껜 비밀이다. 절대 세어나가면 안 된다. 대표님 뿐 아니라 회사의 그 누구도 보면 안 된다.) 서점 카페에서 글쓰기를 시작하리라.


..... 부탁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말도 안 되는 글 말고,
부다페스트의 야경 같은 멋진 글을 써낼게요.
프라하 성 같은 감성적이지만 단단한 글을 써볼게요. 해피 세드가 가득한, 톤 다운된, 하지만 은은한 향기와 색채가 있는, 과하지 않지만 묘하게 공감되는, 글을 읽고 나니 여행을 떠나고만 싶어 지는, 괜시리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한 번 더 둘러보게 되는, 그런 글을 써낼게요.
천사 같은 그 프로젝트가 빛날 수 있도록 열심히 글을 쓰겠습니다.ㅎㅎ
.....

나의 마지막 남은 3일의 휴가..
이 달콤한 시간을 붙잡고 싶은 마음에 나도 모르게 망언이 나온다.
아름다운 글을 써내려고 노력하는 수많은 작가들에게 죄송할 따름이고,
나에게 휴가를 준 회사에게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서점에서 사진을 못찍고 와버려서, 내 방 책장사진 투척.
우리 신혼집의 거실 서재 사진입니다. 괜히 자랑하고 싶어서...


매거진의 이전글 거실 서재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