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여행 이야기
이번 여행의 처음 이틀과 마지막 이틀을 책임질 '빈(wien). 빈에서 인 앤 아웃을 하는 일정으로 비행기표를 끊다 보니 그렇게 일정이 짜여졌다.
'비엔나'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더 익숙한 도시.
몇 세기 동안 서유럽과 동유럽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해왔던 도시.
언제 봐도 가슴 설레는 [비포 선라이즈]의 배경이 된 도시.
그 아름다운 이국적인 도시를 아내와 두 손 꼭 잡고 온종일 거닐었다.
빈의 거리는 참 아름다웠다.
유적지와 그렇지 않은 곳의 구분이 없을 정도로 사람 사는 집들과 골목이 모두 그들만의 양식으로 색채를 지니고 있었다. 심지어 맥도날드까지 그 규칙을 지키고 있었으니 말 다했다.
그러다 보니 집을 나서서 역으로 향하는 그 길이 너무 좋았고, 관광명소를 찾아 헤매는 시간들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게다가 오늘 빈의 하늘은 완벽해서 사진 초보자로 하여금 사진 찍는 즐거움을 선사해주었다.
오스트리아는 특히 예술을 사랑했다.
빈을 터전으로 두고 800년 동안 유럽의 한 축을 담당했던 합스부르크 왕가는 일찍이 예술을 사랑하여 전 세계 수많은 예술품들을 수집했고, 음악, 미술, 건축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였다.
그 예술사랑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아, 사회주의 속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인정했던 오스트리아.
그 찬란한 흔적을 쫓아 걸었다.
빈에서 가장 대표적인 박물관은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미술사 박물관]이다.
이 곳은 고전악기, 무기와 갑옷, 왕궁의 보물, 그리고 거장들의 회화작품들이 전시되어있었다.
나는 악기도, 갑옷도, 회화도 잘 몰랐지만 그 압도적인 분위기 속에서 박물관이 주는 신비로움을 마음껏 만끽했다.
몇 백 년 전, 우리보다 먼저 살았던 누군가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긴 곳.
목숨을 걸고 지키고 싶은 무언가를 위해 단호히 갑옷을 입고, 악기를 켰으며, 조각칼과 붓을 들었을 그들의 신념의 깊이를 생각하니, 그 전시된 사물들에 깃든 기백에 눌러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전시된 사물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박물관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거다.
사물 하나를 보고서도 그것이 주는 과거의 이야기를 재해석해볼 수 있는 즐거움.
사물이 주는 기운을 느끼며 나 또한 희로애락을 함께 느끼게 될 때 그 공간은 죽은 공간이 아닌 산 공간이 되고, 정적인 공간이 아닌 동적인 공간으로 바뀐다.
오늘날 오스트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가 되었다. OECD 국가 들 중 1위를 가장 많이 차지한 국가이다.
경제, 산업, 환경, 문화, 교육, 행복감이 모두 높은 나라. 치열하지 않지만 단단한 나라. 편안하고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도 열정이 있는 나라. 거리마다 모차르트의 음악이 울려 퍼지는 나라.
서울과는 너무 다른 오스트리아의 수도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
좀 더 느리게 걷고, 많이 웃으라고,
열린 마음을 가지고, 예술을 사랑하라고.
#. 와이프가 비엔나 교환학생 시절 즐겨갔던 식당을 함께 찾아갔다.
우리의 인연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6년 전.
그녀가 즐겨가던 이 식당에서 같이 브런치를 먹고, 커피를 마셨다.
한층 더 가까워진 그런 기분.
이 여행의 또 다른 목적이기도 했던 동유럽 여행.
본격적으로 시작될 앞으로의 일정이 기대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