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로 3시간을 달려, 빈에서 부다페스트로 넘어왔다. 비슷한 듯 다른 풍경.
오스트리아가 전통 있는 유럽의 귀족 같은 느낌이라면, 헝가리는 격식과 체면보다는 자유롭고 활기찬 분위기였다.
'빈'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곳에 와서는 '빈'의 아름다움이 살짝 잊혀질 정도였으니, 사람마다 주관적이겠지만 더 내 스타일이라고 할까?
부다페스트에서 우리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 준 곳은 와이프가 예약한 에어비엔비 숙소였다.
유럽 특유의 이국적인 건물들이 즐비한 거리.
그런 건물들 중에 우리가 3일 동안 묵을 집이 있었다. 이런 소박한 즐거움 때문에 에이비앤비가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거구나 싶었다.
본격적으로 부다페스트 이야기를 하자면.
그곳에 발을 딛기도 전부터 이미 멋지다는 선입견이 가득했던 곳이다.
유럽여행을 여러 번 다녀온 와이프가 다시 가고 싶은 도시 1위!! 이미 세 번이나 다녀간 와이프가 또 오고 싶어 했던 도시라니, 와이프와 취향이 비슷한 나도 분명 그렇게 느껴지리라 기대했었다.
나에게 생소하기만 했던 이 도시는 몇 해 전 봤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여러 평론가들이 말하듯, 영상미가 뛰어났던 영화.
톤 다운된 색채와 차분한 느낌이 어우러지는 도시의 분위기에 매료되어 그저 막연히 신비로웠던 그런 도시.
손에 닿을 것 같지 않아서 멀게만 느껴졌던 그런 도시였는데, 지금 이 곳에 와서 사진을 찍고,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으며 거리를 거닐고 있다.
이제 서서히 여행에 대한 실감이 나는 것 같다.
한때 동양의 유목민족이었던 훈족이 전유럽을 휩쓸었었던 적이 있었다.
그 훈족의 본거지였던 '헝가리(hungary)'라는 이름은 '훈족의 땅'이란 뜻이다. 이것이 헝가리가 유럽의 아시아라고 불리게 되는 이유이다.
(서양인들이 기억하는 동양의 역사적인 인물 중 석가모니, 칭기즈칸, 진시황 다음으로 4위를 차지하고 있는 아틸라. 훈족의 대왕이었던 그는 찬란했던 로마를 처참히 무찔렀다. 훈족에게는 영웅이었던 그는, 유럽인들에게는 악명 높은 악마의 존재였으며 오래도록 그렇게 기록되었다. 우리가 우는 어린아이를 달랠 때 호랑이나 도깨비가 온다고 겁을 주듯, 유럽인들에게 그 대상은 바로 아틸라였다.
헝가리는 기독교를 공인받고 유럽에 소속되기 위해 훈족의 후예라는 것을 숨기기도 했지만 한때는 그들의 민족주의 정신을 위해 호전적인 훈족을 이용하기도 했다. 헝가리 인들에게 훈족은 애증의 존재인 것이다.)
헝가리는 2000년 전 로마제국의 일부였다.
5세기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훈족이 사라진 후,
또 다른 유목민족인 마자르족이 독립왕국을 세웠지만 13세기부터 다시 몽고, 오스만 제국, 오스트리아의 침략을 잇달아 받았고,
여러 동유럽과 비슷하게, 세계 대전의 잇따른 패전국이 되며 공산주의 국가를 걷다가,
비교적 최근인 1990년대에 비로소 사회주의 시스템에서 벗어난 국가로 변모한다.
누군가 부다페스트를 'happy sad' 라 했던가.
침략의 역사만큼이나 많은 문화교류가 일어났던 곳.
말 탄 유목민들과 로마의 귀족, 이슬람의 문화가 모두 섞여있는 곳.
유럽에 속하기 어려웠던 말 탄 이방인들의 소외감과, 그럼에도 개종을 하고, 유럽 속으로 숨어들고 싶어 했던 새로운 귀족들의 몸부림.
또 세계대전과 민족주의를 거치며 시대의 흐름으로 국가의 명분을 만들어야 했던
모든 국민들의 나라를 사랑해던 마음이 반영되어
이 도시는 또한 이 도시만의 강력한 색채로 남게 된 것이다.
비교적 늦게 생긴 국가를 정당화하기 위해 더 활발히 지어진 수려한 건물들이 어우러져
지금은 야경이 아름다운 유럽 최고의 관광국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곳.
그런 유럽의 아시아를 하염없이 걸었다.
몽고제국의 침략으로 폐허가 된 뒤,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 지어졌던 언덕 위의 석조 성벽. 하지만 이 성은 그 후 무려 31번이나 포위되었다고 한다. 헝가리 영욕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역사의 흔적. 그 때문에 이 곳은 더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다.
유명한 관광명소도 흥미롭게 봤지만, 우리 부부는 인적이 드문 구석구석을 찾아 걸었다.
이 곳을 찾아 부다페스트에 온 것처럼,
마치 이 차분하고 아담한 골목을 걷기 위해 이 먼 곳까지 온 것처럼, 그렇게 그저 많이 걸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어디로 가는지 잘 묻지 않았다.
이것이 줄곧 우리를 따라다닌 우리만의 부다페스트 여행 방법.
우리 주위에는 자유로운 공기가 둥둥 떠다녔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