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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괴물 Aug 28. 2016

달리기, 400m계주, 그리고 올림픽

일상 / 일기 / 생각 / 30대의 감성


어렸을 때 육상부였던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6학년 때까지.
그때는 모든 학교에 육상부가 있었고, 교육감 주최로 크고 작은 시대회도 자주 열리곤 했다.
나는 '100m'와 '400m 계주' 선수였는데
그때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모니터 속으로 선수들이 트랙을 뛰는 모습만 봐도 다리에 힘이 풀리는 걸 보면 그때의 그 긴장감과 짜릿함을 온몸이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우승을 한 그런 극적인 사연이 있는 건 결코 아니다. 인간적인 3등)

어린 시기였지만,
우리 초등학교 육상부는 쳬계적으로 훈련했었다. 
체력훈련과 순발력 훈련, 심지어는 정신훈련까지도.
다른 친구들보다 한 시간씩 먼저 등교하여 운동장을 달렸고, 방과 후에도 기록 훈련을 했다.
스파이크를 신고 모래 운동장을 거침없이 뛰었으며,
바통터치를 수도 없이 연습하며 마치 국가대표 선발전이라도 나가는 것처럼 의기양양, 긴장감 가득 훈련했던 그때.
순수하게 그저 달리는 게 좋았던 그때가 생각난다. 

초등학생 때의 달리기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운동신경이 크게 좌우하는 것 같다.
거기에다가 자주 많이 뛰어놀아서 생기는 다리 근육이 가속도를 붙여준다면 남들보다 빠르게 뛸 수 있는 그런 시절이었다.
중학생이 되어 나보다 더 크고, 더 빠르게 2차 성징을 맞은 괴물 같은 친구들에게 학교 1위 자리를 내어 주긴 했지만, 지금까지 나의 자기소개서와 이력서의 [특기] 란에는 늘 '달리기'가 적혀있다.

트랙만 보면 여전히 설렌다. 동네의 작은 트랙이라도.


오늘 리우 올림픽 계주를 보며 처음으로 큰 대회에 나갔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트랙과 관중을 보는 순간 다리가 얼어붙어버렸고,
경기를 준비하며 아무리 다리를 주물러봐도 힘이 풀려 도무지 감각이 없었다.
전력을 다해 뛰고 나서도 내가 트랙 위를 뛰었던 건지, 구름 위를 뛰었던 건지 그저 심장만 쿵쾅대던 그때의 오감이 떠올라 경기를 보는 내내 다리가 풀려버렸다. 

모든 육상을 좋아하지만 나는 특히 계주를 좋아했다.
오로지 혼자서 그 부담을 짊어지는 경기와 계주는 다르다. 
4명의 선수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바통을 통해 전달되는 열정과 혼을 넘겨받는, 그리고 다시 동료에게 나의 그것을 덧붙여 넘겨주는 그 짜릿함은 늘 나를 흥분시켰다. 
가을 운동회 청백전만 하더라도 마치 세기의 드라마를 보듯 흥분되는데,
대회에서 계주 선수로 뛰었던 그 경험으로 말할 것 같으면, 마치 내가 엄청난 연예인이라도 된 듯한 그런 착각 속에서 질주를 했던 그런 시간이었다.

여유로운 토요일 아침,
릴레이 경기를 몇 번이고 돌려보며 자아도취에 빠져버렸다.
티비 속 선수들에게 감정을 투영하며 아침 내내 브라질 스타디움을 거닐고 있다. 

브라질 리우 올림픽 남자 400m 계주 결승 마지막 주자의 피니쉬.
브라질 리우 올림픽에서 우승한 자메이카 남자 선수들.


올림픽은 참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밤잠 설쳐가며 작은 종목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이유는 그 안에서 승패와 상관없이, 전 세계인의 축제를 함께 즐기고 싶어서이다.
올림픽의 모든 경기 속에는 희로애락이 있다. 
자신과의 싸움 속에서, 
그리고 국기를 가슴에 박은채, 
전 국민을 대표하여 이름을 호명받는 그 순간 느껴질 그들의 뭉클함을
멀리서나마 전달받고 싶은 마음에 
나는 늘 올림픽에 집착한다. 


오늘은 아침부터 설레는 맘으로 기다린, 
남녀 400m 계주 경기가 그랬다. 
나를 20년 전 그 스타디움 안으로 다시 보내주었고,
최선을 다해 트랙을 뛰는 선수들에게서 열정을 가득 수열 받았으며,
지금 당장 어디라도 달려야만 할 것 같은 순수한 욕망을 건네받았다.

자메이카와 일본의 결승 마지막 주자간의 역주 모습. 괜시리 뭉클하는 장면이다.
응원했던 미국 여자 계주 대표님의 모습.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마음보다 몸이 뒤쳐져서 의식적으로 속도로 낮추며 뛰어야 한다. 
바통 대신 마우스를 잡으며 설레는 일을 모니터 속에서 찾아야 하고,
인생에서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것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볼트의 올림픽 3관왕 3연패와
아시아 신기록을 내며 미국을 이긴 이웃나라 일본을 축하하며,
브라질이 아닌 서울의 서대문구에서
올림픽의 여운을 만끽하기 위해 경건한 마음으로 신발끈을 졸라맨다. 

오늘은 아마도 구름 위를 뛸 것만 같다. 

구글에서 찾았었던, 내가 좋아하는 달리기 동기부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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