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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괴물 Sep 29. 2016

길 고양이 부양 이야기

우리 집에 새로운 식구가 생겼다.


고향 부모님 댁에 새로운 식구가 생겼다.


몇 해 전 서울에 놀러 오신 부모님께서 자꾸만 누구 밥을 챙겨줘야 한다고 걱정하시길래 물어봤더니,

그 대상은 바로 길고양이.


오래된 주택들이 모여있는 고향 집은

길고양이들이 유독 많이 살고 있는 동네다.


처음에는 추운 겨울 힘없이 기웃거리는 고양이가 불쌍해서 남은 음식들을 그릇에 담아 주곤 하셨는데, 그렇게 고양이 한 마리가 식구가 된 이후 우리 집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렇게 보살핌을 받으며 집 마당을 떠나지 않던 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낳게 되고,

그 새끼는 처음부터 그들의 집을 우리 집 마당으로 정한 듯했다.

게다가 그 새끼 고양이 중 한 마리가 다시 새끼를 낳아 우리 집은 고양이 3대와 함께 살아가게 되었다.





고양이 전용 물통, 장난감, 그리고 어미와 새끼를 배려한 개별 밥그릇 까지.

비싸디 비싼 고양이 사료를 먹이느라 돈이 많이 든다고 푸념하시지만, 엄마 아빠는 꼭 하루 두 번 고양이들의 끼니를 챙겨주신다.

겨울에는 그들의 집을 손수 만들어 포근한 담요를 두둑이 깔아 주셨고,

새끼를 배어 온 어미 고양이를 위한 독립적인 공간도 만들어 주셨다.

실과 공을 연결한 장난감은 물론이고,

고양이들 주려고 일부러 고기 몇 점씩을 남겨두시는 정성까지.



은퇴 후 적적해하시는 부모님께 이 길고양이들은 가족이자, 친구가 되어버렸다.



길고양이와 집고양이의 경계에 있는 녀석들.

특히 그 가운데 처음부터 우리 집에서 태어난 새끼 고양이들은 누나와 엄마를 주인처럼 따른다.

고양이들의 주인은 집사라고 불리우니 집사라고 해야 하려나.


햇살 좋은 날에 현관문을 활짝 열어두면 현관 안 거실로 들어와 함께 광합성을 하고,

꼭 누나와 엄마의 신발 위에서 낮잠을 잔다.


어디 숨어있다가도 부르면 달려오고,

만져달라고 그르렁대기도 하는 녀석들.


나도 어느 해부턴가 고향집 고양이들의 안부를 묻기 시작했고,

부모님을 뵈러 갈 때면, 어김없이 고양이들과 놀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어느새 고양이들의 이름도 생겼다.

어미, 노랑이, 쥐, 까망이, 꼬리, 얼룩이.

아주 엄마와 누나스럽고 직관적인 이름들.


가장 먼저 온 어미라서 어미,

피부가 노래서 노랑이,

얼굴이 쥐처럼 생겨서 쥐,(그나저나 고양이에게 쥐라는 이름을 붙여주다니 ㅎㅎ)

까만 새끼 냥이는 까망이.

태어날 때부터 꼬리가 말려있는 냥이는 꼬리.

유일한 암컷으로 얼룩무늬가 있는 냥이는 얼룩이.


이름 부르면 반응하는 걸 봐서는 자기들의 이름을 아는 것 같기도 하다.

신기할 따름.



얼마 전 떠난 유럽여행에서도 참 많은 길 고양이들을 봤다.

사람들의 공간과 공존해가며 살아가는 그들.

인류의 도시 역사 속에서 그렇게 인간과 함께 살아갔던 많은 동물들이 도시를 떠났고,

또 강아지처럼 주인을 만나 더 정착하게 된 경우가 있지만,

여전히 고양이는 ‘길고양이’라는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당연히 주인과 함께 살아가는 고양이들도 많지만,

길고양이도 그것만큼 많은 게 사실이다.



사실, 고양이는 개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도도하기 짝이 없는 그들은 감히 밀당의 고수라고 할 수 있다.

애정을 갈구할 땐 못 들은 척 딴청을 피우지만,

포기하고 할 일을 하고 있으면 슬며시 다가온다.


스스로 부끄러움을 알고 있어서,

용변을 볼 때도 눈에 띄지 않는 곳, 정해진 곳에서만 볼일을 본다.

자신의 몸을 늘 청결히 하려고 애쓰며 세수하는 것이 취미인 녀석들.



친한 친구가 서울에서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고양이를 기르게 되어,

나도 의도치 않게 레옹이(친구 고양이의 이름)의 삼촌이 되어버렸다.

아주 어릴 때 분양은 받은 싱가푸라 종의 아주 귀여운 레옹이.


친구가 집을 오래도록 비울 때면

종종 우리 집으로 데려와 며칠 씩 함께 생활하곤 했었는데, 그때부터 나의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아주 애교가 많은 요 녀석.

이 녀석과 함께 일 때는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 사라지곤 했다.

책을 볼라치면 책 위에서 알짱알짱.

컴퓨터를 하고 있으면 키보드 위를 알짱알짱.

퇴근 후에 집에 오면 그릉그릉대며 나에게 폭 안겨온다.

심지어 자려고 누우면 자기도 같이 이불속으로 들어와 눕고, 자고 일어나면 자기도 부시시 잠에서 깨어나 아침 간식을 갈구하던 레옹이와의 추억.

지금도 레옹이가 생각나면 현택이 집에 놀러 가곤 한다.




고양이를 기르는 것도 참 괜찮겠다 싶지만,

이미 고향 집에 6마리의 고양이가 살고 있어서

우선은 그들을 더 책임감 있게 돌보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이 곧 그들의 식량이 되리라.


난데없이 부양가족에 대한 부담이 커지는 어느 날.

연말 정산에는 들어가나 모르겠다.

6마리의 부양가족들이 추가로 들어간다면 환급을 받을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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