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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괴물 Jan 17. 2017

서울 재래시장의 밤

서울 서대문구 영천시장


우리 동네에는 
서울에 몇 남지 않은 전통 재래시장인
'영천시장'이 있다.

퇴근길에 늘 가로지르게 되는 영천시장.


조금 둘러가더라도

도로의 소음 가득한 큰 길가가 아닌,

고양이들의 발소리 아늑한 시장으로 돌아가는 게 습관이 되었다.


매일 나의 하루를 정리하며 걷던 그 길.

사실 내가 퇴근할 때 찾는 '밤의 시장'은

전혀 활기차지 않다. 


상인들이 상점 문을 닫고 있던지,
아니면 이미 문이 닫혀 있던지,

둘 중 하나의 풍경만 평화롭게 남아있다.






나는 불 꺼진 시장 거리를 걷는 것을 좋아한다. 

독특한 취향일 수 있지만,
그게 내 마음을 참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최선을 다해 하루를 살았을 그들의 온기가 여전히 남아있는
그 상점 사이의 길을 걸을 때면,

나도 그들처럼 오늘을 열심히 살았노라 여겨지곤 하는데,
그게 나의 하루에 참 위안이 된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나의 청춘을 잘 보내고 있을까' 
문득 머뭇거리는 생각이 들 때

그럴 때 나에게는 가끔 이런 위안이 필요하다. 





어렸을 땐 나도 엄마를 따라 시장을 많이 갔었다.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
국과 반찬거리를 사러 시장에 나가실 때면
꼭 나를 데려가곤 하셨다. 

그렇게 온 동네 이웃과 마주쳤던 그곳.
나에겐 작은 이벤트였던 그곳을
얼마 전 다시 찾았는데,

처음과 끝이,
다 커버린 내 걸음으로 몇 걸음 채 되지 않은

작은 시장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시장은 그대로였고,
내 시야가 자랐던 것인데,

그게 문득 서글퍼졌다. 

작은 시장도 
큰 세상처럼 느껴졌던 그 시절.

세상은 자꾸만
시야를 크게 가져야 한다고 주입했지만,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고 강요했지만,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렸더니

작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점점 지나쳐버리게 되었다. 

작은 한길 짜리 시장에서도
삶의 향기를 느끼며
희로애락 가득 품을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 나의 세상은
어쩌면 너무 극단적으로 변해버렸다. 

극적인 시야와 극적인 감정에만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그런 무뎌진 감수성이 못내 야속해서
오늘은 작정하고 카메라를 들었다. 
정겨운 시장의 밤거리를 사진 속에 담으며
그 기운을 더 오래 간직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제 곧 명절이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뵙게 된다. 

아들네를 맞이하기 위해,

여전히 그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는 작은 시장에서 
설렌 마음으로 장을 보셨을 어머니.

엄마의 손을 잡고,
함께 시장을 걷고 싶다. 

아무 걱정도 없이
그저 흥정하는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는 게 좋았던 시절.

시장의 상인들과 반갑게 인사하며,

무겁지 않은 콩나물 봉지를 들고

마치 큰일이라도 거드는 듯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귀가하던

그 어린 소년의 순수함으로 
가끔은 돌아가고 싶다. 

이제는 스마트폰 속의 어플을 통해
오전에 장을 보면
오후에는 신선한 식재료들이 배달되는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삶의 터전에서
살아감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는 
전통시장이 참 좋다. 




마침, 

백종원 아저씨가 영천시장에 다녀가신 모양이다. 

그래서 젊은이들도 이곳을 많이 찾게 되었다. 

백종원 아저씨께 감사를 표하며,

아저씨가 다녀가지 않으신 
다른 떡볶이집 사장님들도 기죽지 마시길.

다른 가게에는 송중기와 공유가 찾아가서
더 대박 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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