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영천시장
우리 동네에는
서울에 몇 남지 않은 전통 재래시장인
'영천시장'이 있다.
퇴근길에 늘 가로지르게 되는 영천시장.
조금 둘러가더라도
도로의 소음 가득한 큰 길가가 아닌,
고양이들의 발소리 아늑한 시장으로 돌아가는 게 습관이 되었다.
매일 나의 하루를 정리하며 걷던 그 길.
사실 내가 퇴근할 때 찾는 '밤의 시장'은
전혀 활기차지 않다.
상인들이 상점 문을 닫고 있던지,
아니면 이미 문이 닫혀 있던지,
둘 중 하나의 풍경만 평화롭게 남아있다.
나는 불 꺼진 시장 거리를 걷는 것을 좋아한다.
독특한 취향일 수 있지만,
그게 내 마음을 참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최선을 다해 하루를 살았을 그들의 온기가 여전히 남아있는
그 상점 사이의 길을 걸을 때면,
나도 그들처럼 오늘을 열심히 살았노라 여겨지곤 하는데,
그게 나의 하루에 참 위안이 된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나의 청춘을 잘 보내고 있을까'
문득 머뭇거리는 생각이 들 때
그럴 때 나에게는 가끔 이런 위안이 필요하다.
어렸을 땐 나도 엄마를 따라 시장을 많이 갔었다.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
국과 반찬거리를 사러 시장에 나가실 때면
꼭 나를 데려가곤 하셨다.
그렇게 온 동네 이웃과 마주쳤던 그곳.
나에겐 작은 이벤트였던 그곳을
얼마 전 다시 찾았는데,
처음과 끝이,
다 커버린 내 걸음으로 몇 걸음 채 되지 않은
작은 시장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시장은 그대로였고,
내 시야가 자랐던 것인데,
그게 문득 서글퍼졌다.
작은 시장도
큰 세상처럼 느껴졌던 그 시절.
세상은 자꾸만
시야를 크게 가져야 한다고 주입했지만,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고 강요했지만,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렸더니
작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점점 지나쳐버리게 되었다.
작은 한길 짜리 시장에서도
삶의 향기를 느끼며
희로애락 가득 품을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 나의 세상은
어쩌면 너무 극단적으로 변해버렸다.
극적인 시야와 극적인 감정에만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그런 무뎌진 감수성이 못내 야속해서
오늘은 작정하고 카메라를 들었다.
정겨운 시장의 밤거리를 사진 속에 담으며
그 기운을 더 오래 간직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제 곧 명절이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뵙게 된다.
아들네를 맞이하기 위해,
여전히 그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는 작은 시장에서
설렌 마음으로 장을 보셨을 어머니.
엄마의 손을 잡고,
함께 시장을 걷고 싶다.
아무 걱정도 없이
그저 흥정하는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는 게 좋았던 시절.
시장의 상인들과 반갑게 인사하며,
무겁지 않은 콩나물 봉지를 들고
마치 큰일이라도 거드는 듯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귀가하던
그 어린 소년의 순수함으로
가끔은 돌아가고 싶다.
이제는 스마트폰 속의 어플을 통해
오전에 장을 보면
오후에는 신선한 식재료들이 배달되는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삶의 터전에서
살아감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는
전통시장이 참 좋다.
마침,
백종원 아저씨가 영천시장에 다녀가신 모양이다.
그래서 젊은이들도 이곳을 많이 찾게 되었다.
백종원 아저씨께 감사를 표하며,
아저씨가 다녀가지 않으신
다른 떡볶이집 사장님들도 기죽지 마시길.
다른 가게에는 송중기와 공유가 찾아가서
더 대박 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