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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괴물 Mar 13. 2017

호수 한 바퀴의 여유

한 달에 한 번, 고향으로의 여행




고향을 떠나온 지 어느덧 십수 년이 되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고향을 방문하는 일은

집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결혼 후 새로운 가정이 생긴 뒤로는

고향을 방문하는 일이

익숙한 곳을 여행하는 길이 되었다. 


여전히 그 자리에 계시는

부모님을 찾아뵙는 여행.


익숙한 장소들을 통해

순수했던 그 시절을 찾아내는 여행.


그렇게 한 달에 한번

고향으로의 여행을 떠난다. 





가족이 주는 평화로움은 

그 어떤 아름다움보다 상위에 존재한다. 


당신들의 행복을 한 아름 덜어주신 부모님 덕분에, 삶의 많은 시행착오를 응원해주고

늘 같은 자리에서 버팀목이 되어주신 부모님 덕분에, 나의 오늘은 겨우 평화를 기억하게 된다. 


나도 언젠가 자녀를 갖게 되겠지만

과연 당신들이 주신만큼 사랑을 나눠줄 수 있을까 싶다.


이제는 그들의 인생이

이유 없이 경외 로울 뿐이다. 


그런 가족이 있는 고향.

내가 태어나고 자라난 곳.

학창 시절을 보냈던 곳.


그리고 그곳에는 아주 특별한 나만의 공간이 있다. 






바로 이 호수공원이 그것이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있었던 이 호수는

고향 집 다음으로 좋아하는 장소다. 


이번 여행에서도 어김없이

익숙한 그곳을 찾았다. 


봄을 만끽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호수공원의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었는데,


오리배 옆에서 함께 주말을 즐기고 있는

오리가족들이 인상적이었다. 


저 낯선 듯 익숙한 풍경.


그게 바로 호수의 매력이다.


호수는 바다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드넓은 바다 끝 수평선이 주는 광활함과

역동적으로 넘실거리는 파도와 달리


호수는 늘 잔잔하고 고요하다.

시작과 끝이 분명하기에 마음이 안정되고

크게 너울지지 않는 물결은 언제나 평화롭게 다가온다. 


바다가 거친 일터라면,

호수는 포근한 집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런 호수 한 바퀴를 차분히 걷고 나면

그 여유로움의 여운이 잔잔하게 마음속으로 들어오곤 한다. 







특히 학창 시절.

이 호숫가를 참 많이 걸었다.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일부러 버스 몇 정거장을 일찍 내려

호수를 한 바퀴 걷고 집으로 가곤 했다.


고민이 있을 때도 물론이거니와

고민이 없었을 때도 그저 걸었다.


주로 이어폰을 끼고 아껴둔 음악을 들으며 걸었지만

그저 호수가 소곤대는 소리를 듣고 싶을 때도 있었다. 


집과 학교와 학원이 아닌 제3의 장소.

약간의 일탈과 자유시간을 만끽했던 장소.


때로는 혼자, 또 때로는 친구들과 함께 호수 주위를 걷고 뛰면서 

학창 시절의 방황을 호수공원 안에 남겨둔 채 집으로 오곤 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나의 생각들은

호수처럼 평화롭고 정리되곤 했다.


그 시절 호수는 나에게 한결같이 말했다.

욕심을 더 내려놓고

감사와 겸손을 좀 더 사랑하는 게 어떠냐고.

성공도 좋고 역동적인 것도 좋지만, 

잔잔한 평화로움을 절대로 잊어선 안된다고 했다.


그렇게 호수는 

자칫 한쪽으로 치우칠 뻔했던 나의 위태롭던 감정들을 애써 위로해주었다.


방황하던 그 시절,

나에게 이 호수가 없었다면,

지금껏 여유와 낭만을 즐기는 법을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참 감사한 일이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고향을 찾는 날이면

줄곧 호수가를 걸었다. 


익숙한 그 장소에서 수많은 감정을 풀어냈고,

그 감정들이 추억이 되어 호수 안에 고스란히 가라앉기를 바라며 돌아오곤 했다. 








이제는 아내와 함께 이 곳을 찾는다. 

한 달에 한 번,

함께 고향을 여행하며 나의 과거와 현재를 아내와 함께 만끽한다. 


아내는 나의 가장 좋은 여행 파트너이다.

서로가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서로가 원하는 것들이 비슷할 때가 많다. 


고향을 여행 올 때도,

어김없이 호수공원을 산책할 때도,


그저 걷고, 사진을 찍고,

자유함을 풍기는 카페에서 어김없이 커피를 마셨을 따름이지만

그 모든 순간을 아내가 줄 곧 함께했다. 





오랜만에 익숙한 공기를 만끽했다.

내가 늘 방황했던 그 장소에서,

수많은 생각을 정리했던 바로 그 장소에서,

여느 때와 같은 보폭으로 걸으며 포근함을 느꼈다.


세상에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은 일들이 참 많다.

예기치 않은 일들, 준비하지 못했던 일들도 참 많다.

낭만적인 사람들은 그것을 '필연'이라고 부르고,

또 그것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여유롭기 마련이다.

굳이 이유가 없어도 좋다.

이유가 있어야 할 자리에 낭만이 더해진다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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