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공 성인이 첼로 학원을 선택한 방법, 첼로를 배우고 싶은 이유에 대해
2025년을 한 달 남기고 무작정 찾아간 첼로 교습소. 상담을 받자마자 다음 주부터 매주 수요일 저녁 1시간씩 레슨을 받기로 결정했다.
첼로 선생님은 여기서 10년 넘게 교습소를 운영 중이란다. 처음 개원할 때는 학생 수가 성인 수보다 훨씬 많았지만 지금은 역전되었다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게다. 저출생으로 인해 학생수 자체가 줄어들기도 했고, 나처럼 성인이 되어서 취미로 첼로를 배우고 싶어 문을 두드리는 성인 비율이 점점 늘어났다고 한다. 온라인 비대면 강의도 한다고. 상담받으러 간 날에도 상해에 사는 한국 학생과 온라인 수업 진행 중이었다.
첼로 선생님은 내가 운이 좋다고 했다. 괜찮은 선생님에게(!) 그것도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라고. 선생님을 뵈러 먼 곳을 마다하고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했다.
여기 학원을 찾게 된 경로는 이렇다.
1. 지도앱을 켜서 집 주변 첼로 학원을 검색했다. 검색어는 ‘첼로‘, ’첼로 학원‘, ‘음악‘, ’피아노‘, ’바이올린‘ 등. 피아노, 바이올린을 함께 검색한 이유는 첼로만 가르치는 학원보다 다른 악기와 겸해 가르치는 곳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피아노나 바이올린 교습이 주이지만, 첼로 수요가 있어 이를 병행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2. 지도앱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학원을 다 클릭해서 안내 사항을 다 읽어 보았다. 그리고 연결된 사이트(인스타그램, 블로그, 카페 등)가 있으면 함께 확인해 보았다.
3. 그중에서도 여기 교습소가 눈에 띄었다. 이유는,
1) 첼로만 가르치는 학원이다. 그리고 첼로를 전공한 원장이 직접 운영, 직접 강의한다.
2) 투명한 강습료. 취미반, 입시반 레슨비가 회당 얼마인지 명확하게 공개되어 있었다.
3) 무엇보다도 수강생의 ‘정기 연주회’ 포스터가 꽤 누적되어 있었다.
나 같은 아마추어도 언젠가 첼로 공연을 할 수 있다! 그 연주회가 얼마나 웅장하고 이름 있는지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나’가 무대에 서는 연주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 팸플렛에 내 이름과 얼굴이 들어갈 날을 상상하니… 설렜다. 옷을 갖춰 입고 첼로와 함께 찍은 사진 속 주인공이 언젠가 될 수도 있다니.
이곳저곳 다른 학원을 기웃대지 않고 처음 방문한 이곳에서 20분 만에 수강하기로 결정한 이유에는 선생님의 인품도 한몫을 했다. 초면이어서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선생님의 얼굴에는 진지함과 겸손함, 인자함이 묻어났다(관상은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 전체가 반영된 도장 같은 것이라는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매우 엄격하고 날카롭게 훈련하여 제자의 실력을 한껏 끌어올리는 영화 ‘위플래시’의 ‘플레쳐’ 같은 교수보다, 매번 상대를 응원하고 따뜻하게 대하는 선생님을 만나고 싶었다. 나는 플레쳐 같은 가르침법의 중요성과 유용성을 매우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첼로 전공자가 아닌 취미자의 길을 걸을 것이다. 나는 첼로를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첼로와 평생 함께 할 것이다.
상담 후 알게 된 사실인데 선생님은 세광음악출판사의 ‘한 권으로 끝내는 취미 첼로‘ 공저자이기도 하다. 유튜브로 동영상 강의를 볼 수도 있는데 레슨 예복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하셨다. 실제로 의욕 있는 성인 수강생은 이를 틈틈이 듣고 온다고.
첫 수업이 끝나자마자 책을 주문했다. 그리고 스즈키 첼로 교본 1권도 샀다. 피아노의 체르니 교재와 같은, 불변의 첼로 교본이라고.
상담을 끝내고 학원을 나오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피아노도, 바이올린도 아닌 왜 첼로인가. 첼로이어야 하는가.
흠… 딱 하나로 콕 집어 설명할 수 없는, 얽히고설킨 수많은 이유들이 떠오른다.
약 10년 전부터 최근까지. 삶과 죽음, 죽음과 삶이라는 아득하고 광대한 주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가르쳐야 할 수업의 단원명이기도 했다(십 대가 배우기에는 너무 심오한 ‘삶과 죽음의 윤리‘라는 단원, 나는 교사다). 석사 논문 주제의 일부이기도 했다(예술적으로 승화된 삶, 그래서 삶과 죽음의 경계 따위가 무의미한… 도대체 헤아릴 수 없는 어떤 경지 등). 무엇보다도 내 삶 자체가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던 시기라, 내 삶은 도대체 무엇인지, 이 쳇바퀴 같은 삶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삶의 끝은 어디인지 따위를 밤새 고뇌하던 시기가 있었다.
여차 저차 한 이유로 청각 장애를 가졌으나 음악의 신의 경지에 오른 베토벤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베토벤의 유서(독일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작성되어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로도 불림)를 처절한 마음으로 읽게 되었고, 그러면서 베토벤이란 인물에 매료되어 작곡한 음악을 찾아 들어보다가, 첼로의 울림이 참 좋았고, 첼로 곡을 이것저것 들어보던 와중에, 슈만의 피아노 4중주 op.47 제3악장의 애절한 첼로 소리에 가슴이 뛰었고, 그러다 첼로를 연주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찾아보게 되었고, 유일하게 껴안으며 연주하는 악기인 첼로는 저음의 소리뿐만 아니라 연주 행위만으로도 위로받을 수 있다고 들었고, 어릴 적 음악을 매우 좋아했다는 사실이 떠올랐고, 학업 등을 핑계로 피아노를 그만두어야 했고, 언젠가는 음악을 다시 시작해 보고 싶다는 욕망이 깊숙한 곳에 내재되어 있었고…
각종 이유들이 인연생기가 되어 나를 첼로로 이끈 것 같지만,
이렇게 요약된다. 나는 지독한 외로움과 공허함을 승화할 수 있을까 하여 첼로를 배우고 싶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