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뭇거리지 말고 그냥 시작해
어느덧 세 번째 첼로 레슨. ‘언젠가는 첼로를 배우고 싶다‘라는 생각을, 2025년이 다 가기 전 이를 시행으로 옮겼다는 사실이 이렇게 뿌듯함을 안겨다 줄줄 몰랐다.
레슨은 항상 복습으로 시작한다. 첼로 활 잡기, 악기 부분 명칭 익히기, 개방현 소리 내기 등. 첼로 소리 중 가장 좋은 소리라는 G현을 먼저 낸다음 D현, A현, 마지막으로 가장 묵직한 C현 내기.
지난 시간에 배웠던 대로, 1. 첼로 위에 활을 올려놓을 때 활의 위치를 신경 쓰고 2. 활을 좌우로 움직일 때에도 한 지점(지판 끝부분과 브릿지 사이 가운데)을 벗어나지 않도록 유의하며 3. 활과 현은 십자 모양이 되어야 하고 4.활털의 전체가 아닌 4/5 정도만 사용하려 했다. 배운 것을 잊지 않았어요, 하는 마음으로.
잠깐의 머뭇거림(정말 길지 않은 잠깐이었다)을 포착한 선생님 왈,
“아이들이 성인보다 첼로를 더 잘하는 이유가 이것이에요. 아이들은 생각하지 않고 그냥 하거든요. 그런데 어른들은 생각이 너무 많아요.“
아차.
“아이들은 단순하게 활을 써요. 막힘 없이 과감하게, 주저함 없이. 그런데 성인은 배운 이론을 모두 적용하려고 해요. 그냥 일단 하세요.“
고민하지 말고 활을 일단 놀려야 한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또 내 방식대로(그동안의 내 업식대로) 행동했다. 맞다. 인생도 그렇다. 갑자기 매년 새로 산 새해맞이 다이어리 앞장에 채웠던 위시 리스트가 떠올랐다. 꿈만 꾸었지 시작도 못한 것이 부지기수인 것들. 예를 들면 요가 자격증 따기 나만의 책 출판하기 등등. 물론 첼로 켜기도 근 10년 가까이 목록에 존재했다. 맞아, 너무 고민하게 되면 시작이 두렵다. 그냥 해야 한다.
덕분에 조금 더 과감하게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 십 여분 뒤 선생님은 나의 또 다른 실수 하나를 말씀해 주셨다.
“다시 하는 것은 없어요. 매번 다시 하는 것은 좋은 습관이 아닙니다. 틀림, 또는 부족함 그 안에서 해결해야 해요. 첼로는 오른손뿐만 아니라 왼손도 자주 틀리게 됩니다. 저도 그래요. 틀렸다고 해서 다시 할 수 없어요. 그 안에서 찾아가는(조정하는) 것이에요.“
소리가 나지 않거나 삑사리가 나면 나도 모르게 없는 셈 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나 보다.
레슨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 가르침에 대한 여운이 크게 남았다. 첼로를 켜며 이렇게 인생을 반추하게 될 줄은 몰랐다. 첼로의 가르침은 인생과 동떨어져 있지 않았다.
다음 날, 우리 반 학생이 진학 상담 겸 인생 상담이 필요하다고 교무실로 찾아왔다. 이 학생은 패션 업계에서 일하고 싶지만 부모님은 일단 대학을 가서 공부하고 취업하는 일반적인 루트를 원하셔서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물었다. “그럼 패션 쪽에 일하고 싶으니까 네가 준비하고 있는 것은 뭐야?” 학생은 대답했다. “일단 관련 유튜브(만) 보고 있어요.” 나는 말했다. “지금이라도 아주 사소한 무엇이라도 시작해 보는 게 낫지 않아?” 학생은 말했다. “나중에 노트북 사면 시작해 보려고요. “ 갑갑했다. 학기 초부터 나는 이렇게 말했다. “너만의 패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봐라. 그게 인스타그램이든 유튜브든, 블로그든 어떤 플랫폼이라도 좋다.“라고. 네가 패션에 진정 관심이 있다는 것을 말로만 보여주지 말고 일단 무언가라도 시작해 보라고. 언젠가 그게 너의 큰 자산이 될 거며 너를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거라고. 하지만 이 친구 또한 쉽게 시행하지 못했다. 분명 여러 이유가 있었을 테다. 내가 그동안 첼로를 켜지 않았고, 요가 자격증 학원에 등록하지 않았으며, 글도 정기적으로 쓰지 않았던 것처럼. 아마 아직 미성년자이지만 20년 가까이의 세월 동안 어쩌면 나보다 많을 수 있는 실패가 누적되었기 때문일 거고, 그 실패들로 인해 타인으로부터 받는 비난들이 참 아팠기 때문이었을 거며, 이로 인해 자존감이 많이 무너져서 그랬을 거다. 그래서 다시는 실패하지 않도록 “모든 걸 갖추었을 때” 시작해서 성공가도를 달리려 하는 아이의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제 나도 못했던, 머뭇거리지 않고 그냥 해, 같은 말을 상담을 통해 그럴싸하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네. 나도 못하면서.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