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기부터 완벽하게 익힌 후 진도 나가면 안 돼요?

완벽주의자가 게으르고 주저하는 이유

by 정전

6번째 레슨이다. 잠시 담소를 나눈 후 오늘도 개방현 연주(왼손으로 지판을 아무것도 짚지 않은 상태에서 오른손으로 활 사용)부터 시작한다.


레슨 시작부터 두 가지 문제를 발견했다.

1. 오른손으로 활을 쥘 때 <엄지 손가락>이 과도하게 꺾이는 문제


연습실에서 혼자 신들린 듯(?) 연습하다가 어느 순간 활을 쥔 오른손을 보면 엄지 손가락이 과도하게 꺾어 들어가 있다(아래 왼쪽 사진 참고). 레슨 때 선생님께 여쭸다. 엄지 손가락이 이 모냥이에요. 선생님 왈, 너무 힘이 많이 들어가서 그렇단다. 계속 강조하신다. “힘을 빼야 해요.” 하지만 초보자는 쉽지 않을 거란다. 엄지 손가락 모양은 꺾이지 않고 둥그렇게 되어야 한다(아래 오른쪽 사진 참고). 이 과정을 누구나 밟는단다.


2. 활털을 잘못 사용하는 문제


맨 첫 시간에 활털이 현에 어떻게 닿아야 하는지에 관한 세 가지 중요 포인트를 배웠다. 브릿지와 지판 정가운데 활을 위치하고, 활털과 현은 직각을 유지하며, 활털은 현에 4/5 정도 닿게 한다는 것. 그런데 말이 쉽지 참 어렵다. 나의 시선은 첼로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전면 거울이 없고서는 내 활이 ‘정가운데’에 있는지 ’직각‘을 유지하는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활은 현의 가운데 지점에 있어야 하는데 오른쪽 왼쪽으로 움직일 때마다 계속 오르락 내리락이다. 그리고 현에 4/5 닿아야 할 활털이 1/2 밖에 안 닿는단다. 벌써부터 ’요령’을 피우고 있다. 선생님은 웃으며, 활털이 덜 닿으면 마찰력이 감소되어 부드러워져 많이들 그리 한단다. 하지만 틀린 자세임은 명백하다.


종합하면, 기초가 엉망이다. 하지만 선생님 왈,


기본기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나아가야 한단다.


순간, 큰 깨달음이 왔다.


내 삶의 고질적 문제들과 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결론부터 말하면, 성실함을 무기로 많은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왔지만 모두 ’중급’ 수준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대학에서의 연구도, 외국어 학습도, 요가도. 즉 그럭 저럭은 하지만 프로(스페셜리스트)는 되지 못한 것.


완벽주의적 성향을 발휘하여 무언가를 배울 때마다 기초부터 완벽하게 마스터해야 한다는 스스로가 만든 족쇄 때문이다. 즉 기초가 완벽하지 않으니 계속해서 나아가지 못하고, 스스로 기초라는 웅덩이 속에서 머물렀다.


나름 그럴싸한 이유는 있었다.


이것도 못하는 데 다음 스텝을 어떻게 넘어가나.

기초도 못하는데 다음 진도를 나가는 게 의미가 있나?

다음 단계 전까지 지금까지 배운 것을 깔끔하게 해내야 하지 않을까?


심지어 선생님에게는 이런 제자도 있었단다. “저는 오른손만 제대로 배우고 싶어요. 왼손은 안 가르쳐 주셔도 돼요.”


결국 그 제자는 제풀에 지쳐 6개월 만에 첼로를 그만두었다고. 기본기는 결코 반년만에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란다. 3년 후에도 5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아니 평생 닦고 익히는 것이라고. 또한 기본을 넘어 다음 스텝을 지속적으로 밟아야 재미를 느껴 꾸준히 할 수 있다고.


선생님 또한 고백하셨다. 자신의 완벽주의적 성향 때문에 연주자로서 무대에 정식으로 데뷔하는 것을 미루고 미뤄 왔었다고. 전공자임에도 아직 실력이 부족하다(?) 생각했다고. 그런데 그것이 정말 바보 같은 생각임을 깨닫고 나서 곧 데뷔하셨다고! (짝짝)


완벽주의자의 행태에 대한 수많은 예시가 떠오른다...


어느 완벽주의자가 완벽하고 짜임새 있는 하루를 보내기 위해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로 마음을 먹고, 내일부터 무엇을 할지 밤늦게까지 완벽한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아차, 계획에 집중하느라 늦잠을 잤다. 이 상황에서 완벽주의자의 행동은 무엇일까?

1. 지난 것들은 흘러 보내고, 늦었지만 일어난 시각부터 해야 할 일을 한다.

2. 어차피 망한 오늘은 엉망으로 보내고 내일부터 상쾌하게 새로 시작한다.


영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하고 싶은 완벽주의자가 있다. 큰 마음을 먹고 미국에 갔다. 이 사람은,

1. 집 밖에 나가 구조가 엉망인 문장을 일단 지껄인다.

2. 문법적으로 완벽한 문장을 구사할 때까지 타인 앞에서 입을 열지 않는다. 집에서 혼자 마르고 닳도록 열심히 연습한다.


브런치에서 완벽한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 이 작가는,

1. 쓰레기에 불과하지만 일단 싸지른(?) 글을 공개하고 본다.

2. 퇴고하고 또 퇴고하여 완벽한 글이 될 때 즈음 글을 공개할 것이다.


많은 완벽주의자는 2번으로 행동할 것이다. 아니, 바로 내가 그렇게 해왔다. 하지만 난 이제 1번처럼 실천하고 싶다. 지금도 결코 늦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완벽주의자는 두려움이라는 벽 속에 자신을 꽁꽁 가둔 것과 같을 수도 있다.


타인의 비난과 조롱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자신의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두려움.


누군가가 활을 쏘면 완벽주의자는 그 활을 무방비 상태로 맞고, 심지어 본인이 활촉을 자기몸에 깊숙이 후벼 파 더 큰 상처를 만든다.


나는 완벽할 수 없고,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타인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부족한 나를 있는 그대로 지지하고 마음을 나누는 소수의 사람들로 주변을 채워간다면.


과거부터 지금까지 내가 스스로 만든, 나에게 덕지덕지 붙은 업보(습)를 떼어내고, 새롭고 균형 있는 삶을 살아 보는데 첼로가 힌트가 되고 있다. ”잘못 탄 기차가 때로는 목적지로 데려다 준다“더니. 첼로라는 기차에 올라탔더니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끌어준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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