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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인 한유화 Mar 30. 2023

비혼이 결혼식에 가면

하객으로 앉아있는 나의 머릿속에 벌어지는 일

'에? 난 분명 직진으로 쭉 가는 코스인데?'

분명 수백 명이 함께 북적북적하게 출발한 마라톤에서, 갑자기 내 시야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우르르 다른 코스로 빠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다들 매우 확신에 찬 모습으로 당연하다는 듯 다른 길로 가네? 지금 내가 이상한 곳으로 가는 건가? 애초에 참가한 경기가 달랐던 건가?


결혼하지 않는 계획을 갖고 비혼 상태로 살면서 주변의 다수가 결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기분을 묘사하자면 이렇다. 분명 대중적인 시선에서는 '비혼 = 독특한 결정'인 것이 맞고, 그 소수에 해당하는 내가 '특이한 코스'로 혼자 빠져나간 것일 텐데. 이상하게도 내가 다른 길을 택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나를 빼고 가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는 것이다.




결혼하지 않는 계획을 장기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나는 사실 결혼식에 참석하는 횟수 자체가 극도로 적다. (기본적으로 결혼식에 가지 않는다. 직장 동료의 결혼식도? 그렇다. 정기적으로 만나서 취미 활동을 같이 하는 지인도? 학창 시절 친구도? 마찬가지다.) 결혼하지 않는 "혼삶"에 대해 책까지 쓰고 난 후에는 조금 편하게 축하할 수 있다.

정말 축하해! 내가 결혼과 관련된 건 안 하는 삶을 살다 보니 결혼식에서 말고 다른 방식으로 축하해 주게 될 테지만, 네 결혼 과정 하나하나와 그에 대한 네 감정과 마음이 늘 궁금할 거고 응원할 거야!


물론 비혼이지만 지인의 결혼식에 기꺼이 자주 참석하는 사람들도 많고, 비혼식으로 축의금에 대한 밸런스를 맞추는 경우도 간혹 접한다. 하지만 사람들마다 어떠한 의식을 대하는 태도나 의미가 다를 수 있다는 정도만 공감해 줄 수 있는 분위기면 참 좋겠다.


비혼이 결혼식에 가면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결혼식 안 간다고 하지 않았냐고? 내 경우에는 1~2년에 한 번 정도 모종의 이유로 가게 되는 때가 있다.) 본적으로 어떠한 행사를 '이벤트' 그 자체로서 좋아하는 나는, 예식장의 은은하게 반짝이는 조명과 꽃을 보며 즐겁고, 주인공들의 스타일링을 보며 즐겁다. 꼬까옷을 그럴듯하게 차려입고 쫑알쫑알 꿈틀거리는 꼬마 하객들과, 그들을 통제하기 위해 분주한 보호자의 합을 보는 재미도 좋다.


하지만 무엇보다 즐거운 것은 '가치관을 듣는' 순서들이다. 주례나 혼주가 가장 중요한 '당부'를 전하고, 혼인 당사자들이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다짐'을 전하고, 하객들이 '축복'을 전한다. 이럴 때 어떤 말들이 오가는지 귀 기울여 들으면 그 사람의 가치관의 핵심을 알 수 있게 된다. "이쁜 애기 낳고 행복하게 잘 살아!", "아침밥은 아니더라도 꼭 건강주스를 갈아주겠습니다!" (의외로 여러 번 들었던 놀라운 멘트는 "날씬함을 잃지 않도록 꾸준히 관리하겠습니다!"에 해당하는 말... 와오)


나라면 어떤 다짐을 할까 떠올려 보기도 한다. 

"아기를 낳자고 하든, 낳지 말자고 하든. 배우자가 의도하는 인생의 방향을 맹목적으로 따르거나 무시하지 않고 팀으로서 진중하게 논의하는 삶을 꾸려나가겠습니다."

"스스로의 건강을 잘 챙기고, 저로 인해 배우자도 건강한 영향을 받을 수 있도록 일상의 좋은 습관들을 지켜가겠습니다.'

이런 정도가 되지 않을까. 적어놓고 나니... 매우 정 없이 느껴지기도 한다. (비혼 이어서라기보다는, MBTI와 연계된 특성 탓인 것 같기도 하군.)


조금 더 '이쁘게' 적어까.

"내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순간조차도 항상 당신 말을 귀 기울여 들을게."

"소소한 집안일에서 누군가가 서운해지지 않도록 행동은 조금 더 부지런히 하고, 마음은 조금 더 너그럽게 갖도록 노력할게"

"누가 아침밥을 차리든, 물 한잔만 들이켜고 바삐 나가든 상관없어. 가뿐한 몸과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여유로운 아침 시간을 갖자. 현관문을 나설 때 가끔은 따뜻한 포옹으로, 가끔은 경쾌한 하이파이브로!"





이런 상상을 하나씩 쌓다 보면 어느덧 양가 부모님과 인사하는 뭉클한 순간이 오고, 마구 박수를 치다가, 휴대전화 플래시를 별처럼 켜고 흔들다가, 육회랑 초밥이랑 깐풍새우 같은 것들을 먹고 포도 몇 알이랑 케이크 조각을 집어먹을 때쯤 주인공 커플을 다시 한번 만나게 된다. 결혼식에 대한 몇 마디, 신혼여행에 대한 몇 마디(feat. 부러움과 탄성)로 오늘의 축하를 마무리한다.


오늘의 주인공과 나는 오늘을 기점으로 어떤 관계를 이어갈지 상상해 본다. 집들이, 베이비샤워, 돌잔치 같은 여러 개의 점이 찍힌 꺾은선 그래프가 떠오르면 살짝 허전해진다. 관계라는 건, 삶이라는 건 절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고 속으로 고개를 세차게 저어 본다. ('혼삶'에게 실제로 결혼한 지인들과의 관계는 정말 중요하다. 다른 세계와 나를 이어주며 1인 가구의 세계관을 넓혀주는 소중한 '포털' 같은 존재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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