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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인 한유화 Mar 31. 2023

난 이렇게 좋은 날에 태어나기 위해 한 게 없다

꽃비

꽃비 


- 한유화


난 이렇게 좋은 날에 태어나기 위해 한 게 없다

세상에 여태 없던 것이 갑자기 생겨날 거라는 걸

어느 순간 꿀꺽 하고 알게 된 한 사람이 있었다


너도 나도 정신없이 가차 없이 태어나는 날에

나도 슬쩍,


무언가를 하고 무언가가 되고

햇살도 꽃비도 할 것이 없

시인 숨결을 뱉어 놓으면 목소리로 자라고 책으로 피어나는 그런 땅에

은행나무를 심어야 하는 계절


낳으면 자라기 시작하는 날

물을 주지 않아도 구석구석

뽀얗게 바람이 드나들면


봄날을 낳

나는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었고

다만, 존재를 아는 존재가 되었다.






엄마는 공격적인 방식으로 사랑이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기대하고 기다리기도 전에 사랑이 먼저 실체가 되어 곁에 성큼 와 있었습니다. 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낯선 산골 마을에서 그 사랑을 키웠습니다. 달라진 일상에는 노란빛 은행나무 잎사귀가 있었습니다. 사랑이 자라더니 아기가 되어가는 동안 그 잎사귀들을 줍고, 모으고, 팔아서 쌀이 되게 했습니다. 쌀 간식을 오독오독.


제비가 오는 날에 나도 올 것을 알았습니다. 은행잎이 있고 쌀 한 줌이 남아있는 그 집에 은행나무를 심었습니다. 무어라도 툭 던져놓기만 하면 싹이 터서 금세 풀내음을 낼 것 같은 그런 봄날이었습니다. 봄에 핀 사랑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끝도 모르고 자랍니다.


매일 하던 사랑인데, 생일을 맞아 새삼스레 다듬어서 가꾸다 보니 시 한 편이 되었습니다. 나를 낳은 사랑과, 우리가 함께 해낸 사랑이 대단하고 기특합니다. 차오르는 유대감이 흘러나와서 제 생일에 엄마에게 주는 선물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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