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이런 곳을 혼자 여행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길게 늘어선 입국심사줄에서 혼자인 여행객은 나뿐인 것 같다. 아무래도 배낭을 메고 먼 도시를 여행할 때보다는 캐리어를 끌고 휴양 섬을 여행할 때 이런 경우가 잦다. 온통 커플이고 가족이고 나만 혼자인 상황. 그중에서도 사이판은 가장 그러하였다.
'혼자인 사람이 나 혼자인' 이런 상황은 어디에서든 그다지 놀라울 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사이판 섬 안에 들어와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살아온 로컬들 중에는 당연히 혼자인 사람도 있을 텐데, 아니 대체 다 어디들 간 거지? (아내가 있거나 아이가 있거나! 어르신이거나 아이이거나!)
"혼자 있어도 괜찮겠어?"
현지에서 일정을 함께 하던 일행과 흩어지면서 인사를 하려는 찰나였다. 누가 나에게 이런 걸 물어보는 게 너무도 오랜만이라 순간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닌지 의심했다. 족히 한 10년은 못 들어 본 대사 같은데? 혼자 있어도 괜찮겠냐니... 그게 무슨 말이지??
1) 혼자 있으면 심심하지 않겠어?
2) 혼자 있으면 무섭지 않겠어?
3) 혼자 있으면.... 아무래도 혼자니까... 너무 혼자이지 않겠어(????) 으아아,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
'혼자 남겨둬서 마음이 쓰여'라는 뜻인 건 알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내 궁금증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를 혼자 남겨둔다는 것은 왜, 어떤 점 때문에 '마음 쓰일 만한 일'이 되는 것일까? 혼자라서 안 괜찮았던 경우를 떠올려본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하교 길에 나만 혼자 우산 없이 남겨진 때,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그런 상황들이 가끔 머쓱하게 느껴졌다. 옹기종기 처마 밑에 함께 서 있던 친구들이 하나둘씩 자신을 데리러 온 어른의 손을 잡고 떠나갈 때면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당시의 기분은 '어쩔 줄 모르는 기분'에 가까웠다. 그러다 나중에 가수 '이적'의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됐다. 나처럼 우산 없이 혼자였던 아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유퀴즈온더블럭'에서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한 번도 비 오는 날에 우산을 들고 학교로 오신 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 이야기의 결말은 흔히들 지레짐작할 만한 것과는 달랐다. 아무도 서운해하거나 미안해하는 이가 등장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누군가는 어린 날의 쓸쓸한 기억의 대표 에피소드로 삼을 만한 그 상황 속에서 오히려 그는 우산 없이 남아있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비를 맞고 놀면서 깨달았다고 한다. '아, 한번 젖으면 더 이상 젖지 않는구나.'우산 없이 혼자였던 아이들의 공통점은, "비 맞는 걸 좋아하는 어른으로 자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젖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혼자인 것도 두려워 않는다.
엥, 여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이상한 점을 느꼈다. 우산 없이 혼자였던 나의 동지(?)들 중에서는 오히려 비를 더 싫어하게 된 사람도 많다. 그러고 보니 그들의 상당 수가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도 알것 같다.
"엄마가 바빠서 우산 못 가지고 가서 미안해."
혼자인 누군가를 걱정하거나 가엾게 여기는 마음은 대부분 선의에서 온다. 비가 오는 날 어린아이를 남겨둘 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깔깔대며 비를 맞고 즐거웠다고 해도, 그게 엄마가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의도의 '억텐(억지텐션)'일까 헤아리는 마음. 나의 하루가 '비 오는 날'일까 염려하는 마음.
"혼자인 모든 순간이 다 괜찮을 필요는없잖아."
노을을 기다리며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이 시간.바다의 짭짤한 습기가 몸에 내려앉기도 전에 바닷바람이 먼저 쉴 새 없이 머리칼을 날리고, 팔다리에 와서 날아다니는 한가로운 초저녁 시간.바라데로(Varadero)의 해변이 이런 기분이었다. 베니스비치(Venice Beach)도 이랬다. 바르셀로나의 해변도, '헤아리는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