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어른’이 되는 시점이 되면 머지않아 ‘경제적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실감 난다. 보호자로부터 독립하고 경제적 기반을 조금씩 쌓아가다 보면 이윽고 ‘사회적 어른’이 되기 위해 애써야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사회에서 어른으로 인정받으려면 상투를 틀고 비녀를 꽂아야 했다. 가정을 꾸려야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것이었다.
이런 과정들을 거쳐 나가면서 사회에서의 낯선 타인과 조직에 적응하는 방법도 배우고, 새로운 가족과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도 키운다. 이러한 ‘사회성’을 잘 기를수록 더 멋진 어른으로서 인정받을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경제적, 사회적으로 충분히 어른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누군가조차 의외로 미처 준비하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는 단계가 있다. 그것은 ‘정서적 어른’이 되는 과정이다. 끊임없이 다수의 사람들을 만나고 낯선 조직에 던져져도 크게 동요하지 않고 차분히 정서적 안정을 찾아갈 수 있는 능력은 중요하다. ‘다수’와 ‘사회’에 적응하는 능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혼자일 때도 정서적으로 편안할 수 있는 능력, 내 삶에서 혼자인 순간을 나답게 꾸려갈 수 있는 능력, 즉 “혼삶력”이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온전한 내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을 의식하게 되어 자신의 개성과 성격을 전부 드러내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상대방에 맞추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튼은 ‘자신의 중심을 되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튼은 ‘고독’ 속에서 창조의 풍요로운 시공을 보고 있었다.
<혼자 있는 시간의 힘> (사이토 다카시 지음, 장은주 옮김) 중에서
“혼삶력”을 갖춘 어른의 여유는 어떤 모습인가.
주변에서 이런 사람들을 본 적이 있는가? 아무리 봐도 이동 시간이 촉박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 혼자 태평한 사람들. 돈을 안 벌고 있는데도 딱히 조급해하지 않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부류일 가능성이 크다. 경험치가 충분해서 여유가 있거나 vs 경험치가 적어서 무지(無知)로 인한 해맑음이 있거나.
“막히는 구간만 잠깐 지나면 그다음엔 금방이야.”
“예전엔 비행기 탑승 0분 전에 엄청 뛰어서 잡은 적도 있었어.”
“난 가난할 때 한 달에 00만 원으로도 버텨봤어, 괜찮아.”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경험치를 근거로 삼아 여유를 확보하는 경우이다.
자신의 경험을 지나치게 맹신하면서 어리석은 여유를 부리라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여유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면 유사경험을 통한 훈련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자신이 유독 조급해지는 순간이 있는가? 특별히 예민해지는 영역이 있는가? 그렇다면 혹시 내가 그 영역에 있어서 조금 더 긍정적인 경험치를 쌓을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갑작스럽게 혼자가 되어도 ‘오히려 좋아.’ 느닷없이 약속을 취소하는 친구에게도 비교적 너그럽다. ‘오! 나 그러면 000 하려고 했던 거 오늘 해야겠다!”하며 되려 신이 난다. 배우자의 귀가가 늦을 때 필요 이상으로 화가 나지 않는다.
혼자 있어야 하는 시간들, 혼자 해내야 할까 봐 두려운 의무들, 혼자 남겨질까 봐 외로운. 인생에서 이런 순간들을 잘 다뤄내는 혼삶력. 결국 혼삶력은 혼자의 욕구나 필요에 집중하는 것에서 출발해서 1인분의 세계관을, 한 인간으로서의 그릇을 키우는 힘이 아닐까.
나에게 주고 싶은 ‘혼자의 순간’
일상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을 적절하게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도저히 혼자 있을 시간이 없거나, 혼자인 채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이런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혼자 보내는 시간을 확보하는 게 갈수록 더 어려워진다. 이미 내 삶에서 나를 위한 시간이 없어진 지 오래다.
혼자 있는 상황이 어색하거나, 견디기가 어렵다.
혼자인 게 안 좋게 느껴진다. 남들도 안 좋게 볼 것 같다.
혼자 있는 것도 즐겁지만 너무 오랜 시간을 혼자 보낸다.
혼자인 시간이 유익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있는 것 같지 않다.
혼자인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울수록 자기 자신에 대해 들여다보는 몰입력이 중요하다. 조금이라도 몸과 마음에 틈이 생기면 ‘내 생각’을 해야 한다. 하루에 10분 정도라도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면 되도록 일기를 쓰거나, 적어도 메모를 하는 방식으로 몰입하자. 자기 자신에게 주는 인풋(input)도 중요하지만, 혼자일 때 어떤 아웃풋(output)을 내느냐가 더욱 혼삶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반대로 혼자인 시간이 넉넉하다면, 자기 자신과 함께 노는 ‘데이트 코스’를 설계하듯 미리 생각하고 준비도 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나와 잘 지내기 위한 시작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내고 결정하는 것'이다. 혼자인 시간을 싱숭생숭하게 가라앉은 채로 떠나보내고 싶지 않다면 어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나에게 어떤 ‘혼자의 순간’을 주고 싶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