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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인 한유화 Mar 09. 2022

"비혼상태이지만
비혼주의는 아니고요."

비혼은 사상이나 논리가 아니다.

 왜 나는 스스로를 "비혼입니다"라고 소개하지 않는가. 

나에 대해 소개할 때, 나는 조금 담백하고 싶다. 상대가 무관심하게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지는 않을 정도로 흥미롭고 싶지만, 그렇다고 "우와!" 할 만한 거창한 소개는 나를 쑥스럽게 만들기에. 상대가 편안하고 긍정적인 표정으로 "그렇군요" 할 정도의 부드러운 분위기로 나를 이야기하고 싶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비혼입니다"는 다양한 반응과 추가 질문을 야기한다. 미혼의 대체어로서 단순히 혼인하지 않은 상태를 뜻하기보다도, 앞으로도 결혼하지 않고자 한다는 의사표현까지 포함한 단어가 되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비혼은 언제부턴가 '비혼주의'로서 브랜딩이 되어왔다.  


자신을 비혼이라고 소개했을 때 이상하게도 주위에서 부정적인 반응부터 보인다면, 그 이유 중 하나는 특정한 '주의'를 바탕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경우일 것이다. 또한 주의라는 것은 토론의 여지를 준다. 듣는 사람이 의견을 덧붙이고 그에 대한 이유나 생각을 묻는 것도 자연스럽다. 어떠한 주의라는 것은 반드시 반대되는 개념이 있기 마련이기에, 비혼 말고 결혼을 선택한 누군가를 모두 "결혼 주의자"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니 대화 상대가 결혼한 쪽일 경우, 자연스럽게 결혼 주장을 펼쳐야 하는 것처럼 되어버린다. 더 이상 그 대화는 담백하기 어렵고, 공감하거나 응원하기는 더욱더 어려워진다.  


그러나 비혼은 주의도, 사상이나 논리도 아니므로 주장하거나 납득시키는 것이 초점이 아니다.  

비혼은 현재 '상태'이고, 번복할 수 있는 '선택'이다.




  앞서 언급했듯, 지금의 나는 결혼하지 않는 계획이 있다. 이 계획은 소위 "결혼 적령기"를 산뜻하게 지나칠 만큼 충분히 장기적이지만 영원하지는 않다. 모든 계획이라는 것이 그러하듯. 본디 삶이 계획대로만 되는 것은 아닐 터, 전략적으로든 갑작스러운 상황 때문이든 결혼하지 않으려는 계획을 수정하거나 갱신할 수도 있다.


별로 유쾌한 단어는 아닐 수 있다, 적령기. 대학에 가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출산하는 일들에 적절한 연령이 있다는 전제 자체에 반발하고 싶을 수 있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그런 단어에 얽매이지 않고 삶을 설계하겠다고 마음먹는다면 참으로 응원할 만한 일이다. 다만, 다수와는 다른 선택을 하면서 그 시기를 지나간다면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 보는 과정은 중요하다. '미처 몰랐네', '어영부영 지나가 버렸어' 하는 사이에 무언가를 안 하는 선택을 한 셈이 된다면, 그런 삶에는 응원과 공감이 따르기 쉽지 않다. 나는 웬만한 사람들이 결혼 준비하는 것만큼이나 결혼하지 않는 삶을 오래 생각하고, 또 열심히 준비했다. 결혼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배우자 수업, 부모 수업을 생각하겠지만, 결혼 안 하는 삶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대체 그 무엇이 되며 살아야 할지 그 자체를 준비한다.  




  결혼생활에 대한 로망이 존재하듯, 나는 결혼하지 않는 삶에 대한 멋진 그림이 있다. 어린 시절에 스케치북에 끄적이듯 무턱대고 예쁘게 색칠한 그런 그림도 있지만, 대부분은 정신 차리고(?) 성장하기 시작한 시기부터 차곡차곡 디자인한 그림이다. 분야 별, 시기 별로 쪼개진 계획이기보다는 나라는 사람의 삶의 빛깔과 모양 하나하나를 멋진 모습으로 다듬어 가기 위한 '스타일링'에 가깝다. 


  결혼하지 않는 삶에는 한 가지 유리한 점이 있다.  결혼하는 사람들이 결혼 후에 이루고자 하는 삶의 모습을, 나는 결혼하지 않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룰 수 있다(물론 이루고자 하는 내용과 그 형태가 매우 다르겠으나). 결혼이라는 계기와 터닝포인트가 없어도 지금부터 스타일링할 수 있다. 한 단계 더 어른이 되고 나면 하고자 했던 모든 것들의 가능성이 지금 코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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