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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인 한유화 Mar 09. 2022

수줍게 타투를 새겨보았다,
결혼반지를 낄 자리에.

반지가 있고 없고 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다.

 중학교 2학년. '반지를 선물 받은 소녀'의 기분은 예상보다 훨씬 짜릿했다. 사랑받는 기분을 어떠한 '에네르기'로 응축해서 고체로 만들어 내 넷째 손가락에 끼운 것 같았다. 내 손이 아주 어여쁘게 느껴졌다가, 또 어느 순간 반지의 아름다움에 비해 내 손이 거칠거나 둔탁하게 보여 신경이 쓰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특정한 물건에 갖은 상징을 가득 담아 선물한 상대의 '선의'에 감동했다. 

 



 신체의 다른 어느 부위보다도 가장 광고비가 비싼 곳이 바로 넷째 손가락 아닐까. 광고비에 걸맞은 브랜드에서 산, 광고주의 취향에 맞는 디자인의 반지가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그런 곳. 그 광고 효과란 실로 명확한 것이어서 주변 사람의 인식률은 내가 앞머리를 자르거나 립스틱을 바꿨을 때에 비할 바가 아니다. 봤으면 '좋아요'를 눌러줄 수밖에 없는 그런 광고. 


 그래서인지 나는 사실 오래전부터 커플링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만천하에 알리는 광고보다는 둘만 아는 손편지 같은 무언가를 더 좋아하곤 했다. 커플링은 뭔가... 200개쯤 되는 촛불로 만든 길 끝에서 기타를 치고 꽃잎을 뿌리는 청혼 같다고 해야 할까. 적어도 내게는 조금은 쑥스러운 것이었다. 

 

 이런 쑥스러운 마음은 껄끄러움이 되기도 했다. 취업을 한 이후 부터는 커플링을 낀다는 것이, 연애를 한다는 것이 갑자기 어떤 하나의 방향성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웨딩링으로 바꿔 낄 준비를 위한 주변의 관심 어린 인터뷰가 쇄도하니, 아무래도 '입장 표명'이라는 것을 해야 할 때가 있지 않겠는가. 




 나는 결혼반지가 있을 자리에 타투를 새겨 넣었다. (문신이라는 한글 단어가 있지만, 나는 별 수 없이 용문신 뱀문신을 먼저 떠올리는 누아르 팬인지라 굳이 tatoo로 표현한다.) 이 자리에 결혼반지가 있고 없고 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다는 의미로 내 이름 세 글자의 초성을 담백하게 적었다. 반지를 끼고 다닐 때보다 더 자주 내 손을 바라보게 된다. 이 작은 타투가 시각자료로서의 역할을 해 주니 더욱 더 내가 의도하는 톤으로 편리하게 입장 표명할 수 있다는 것도 편리한 점이다. 


 그런 내가 친구들의 반지 낀 손을 보며 괜히 뭉클해지곤 하는 건 조금은 뜻밖의 일이었다. 냉정하게도 주얼리로서의 아름다움에 먼저 주목하곤 했던 내가, 또 다른 무언가에 의해 감동하는 걸 발견했다. 울컥 차오르는 그 마음을 굳이 설명하자면, 반지를 통해 '선택의 낭만'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결혼하는 삶을 선택하고, 나아가서 그 삶을 함께 할 누군가를 선택했다는 선언 그 자체로 낭만적이다. 선택한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생명력 넘치는 행위로 느껴지기에 더없이 열정적이고 우아한 기운이 내 마음을 벅차게 만든다. 


 손가락에 타투를 새긴 나와, 그런 내 타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내 선택이 얼마나 낭만적인지 알고 있다. 혹은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타투 위에 반지가 포개지는 순간이 있더라도 나의 낭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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