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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인 한유화 Mar 09. 2022

마시고 싶지도 않은 라떼를 자꾸 시키는 이유

feat. 로마의 탄산수

  나는 카페라떼를 즐겨 마신다. 그 특유의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을 좋아한다. 속이 든든해지는 기분, 손이 스르르 녹는 기분, 고소하고 부드러운 기분. 사실은 라떼를 마시고 싶지 않은 순간에도 나도 모르게 주문하곤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 라떼의 맛이 아니라, 그 기분이었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만 탁 꼬집어 선택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소소한 영역에서조차 나는 사실 원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꽤 종종. 


어느 날부터는 습관처럼 아인슈패너 같은 크림커피를 주문하곤 한다.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카페에서는 더더욱 그곳의 시그니처 메뉴를 경험해 봐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구수하고 개운한 아메리카노의 풍미가 그리워서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에도 왠지 시그니처 메뉴를 마시지 않으면 손해 보는 것 같은 마음에 선택을 달리 하기도 한다. 물론 시그니처 커피는 대부분 달달하게 크림이 올라가서 아주 맛있지만(아주 아주!), 그 순간의 내 진짜 취향, 진정한 니즈(needs)는 너무도 간단하게 묵살되어버린다.  


처음으로 이탈리아 로마를 여행하며 그럴싸한 곳에서 식사하던 날이었다. 이탈리아어가 대부분인 메뉴판은 물론이거니와 자릿세며 팁 문화도 뭐가 뭔지 익숙하지 않아 잔뜩 곤두선 채로 괜찮은 척을 유지하며 어찌어찌 주문할 음식을 골라놓은 참이었다. 발걸음조차 열정적인 웨이터가 상체를 가까이 들이밀며 내게 물어본 첫마디는 "Sparkling or still?"이었다. 탄산수와 생수 중에 어떤 것을 주문하겠느냐는 질문이었다. 나중에야 이게 유럽권에서는 일반적으로 주문의 첫 단계라는 것을 알았지만, 당시의 수줍었던 나는 익숙하지도 않았던 탄산수를 달라고 대답했다. 푸른빛의 크고 예쁜 병에 담긴 탄산수는 아쉽게도 몇 모금밖에 마시지 않고 남겼다. 여러 차례 여행을 다닌 후에야 물을 주문하지 않거나 자연스럽게 와인 등의 주류를 시키고자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는 걸 터득하게 되었다.  


의외로 이런 식의 질문은 잦다. 하지 않는 것은 선택지에 없다. 제시되지 않은 답안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지식과 경험과 창의성도 필요하고, 그런 답을 선택하기 위한 나름의 용기나 스킬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원치 않는 커피를 시키고 탄산수를 마시는 것과 같은 선택은 종종 일어난다. 단순히 더 기분 좋은 이미지가 연상된다거나, 왠지 이럴 때는 이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또는 놓치거나 손해보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지금이 아니면 나중에는 하고 싶어도 못 할 것 같다는 이유로.  




  내가 혼삶을 선택한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사실 그저, 잘 사는 나를 상상하고 그 계획을 세울 때 결혼 생각이 들지 않았을 뿐이다. 비혼, 혼삶에 대한 어떠한 계기가 뚜렷하게 있지는 않았기에 오히려 내 선택을 의심하고 검증하려 했다. 지식, 경험, 창의성, 용기, 스킬 중 무언가가 부족하기 때문에 내가 혼삶이라는 하나의 답에 갇혀있는 건 아닌가 싶어서. 분명 성장과정이나 가정환경, 인간관계에서의 경험들은 지금의 나를 만든 요인들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내게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심어주었기에 내가 이러한 삶을 계획하게 되었다고 넘겨짚는 건 아주 단편적인 생각이다. 경험과 감각보다는 전략으로 선택하는 혼삶이 조금 더 내 성향에 맞다. 수학을 못해서 이과를 포기하고 문과에 진학하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선택한 혼삶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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