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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인 한유화 Mar 09. 2022

"혼자 여행가면 00하지 않아?"

혼자 잘 사는 사람은, 함께일 때도 더 잘 살 수 있다.

 "혼자 여행 가면 심심하지 않아?"

 "네, 심심합니다. 간혹 뼈 시리게 외롭습니다. 일이 꼬이면 서럽기도 합니다."  


 "혼자 여행 가면 무섭지 않아?" 

 "무서울 때 많죠. 운 나쁘면 위험하기까지 하고요."




 혼자 번지점프를 한다. 하필 칼바람이 자비 없이 머리칼을 후려치는 그런 겨울날이었다. 일행도 없이 혼자 번지점프를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뻔뻔해야 하는 일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갈 때부터 턱이 덜덜 떨릴 정도로 심장이 쪼그라들었지만 딱히 무섭다고 유난을 떨 여건은 아니었다. 바람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는 점프대 위에서 내려다 본 지상에는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잠깐 차에서 내려 번지점프대를 구경하는 커플이 있을 뿐이었다. 꺅꺅 비명을 지르는 건 내가 꽤나 잘하는 일이건만, 이렇게 혼자 털레털레 올라와서 번지점프를 하는 그날의 내게 그런 용기는 생기지 않더라. 호들갑을 떠는 것보다는 차라리 지체 없이 뛰어내릴 용기가 더 쉽더라. 


세상에 이런 고독이 또 있을까, 점프대에서 발을 떼는 순간보다도 추락했다가 다시 튕겨올라서 머리채 잡힌 듯 끌려가는 게 훨씬 무서웠지만 그걸 나만 안다, 나만 알아. 이렇게 쓸쓸하게 정신을 잃는 건가 하던 찰나에 들려오는 박수 소리. 구경하던 커플은 추위를 견디면서 내 고독한 점프를 끝까지 관람해 줬고 심지어 박수와 환호까지 보내줬다! 혼자일 때 경험하는 상호작용이란 이런 것. 보통은 내 친구들이 보내줬을 박수의 빈 자리를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누군가가 채워줬다. 긴 머리 산발을 하고 줄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그들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잠깐이지만, 어마어마한 친밀감이 밀려왔다.   




 그 후로도 나는 독일 맥주 축제에서 혼자 만취하고 상하이 콘서트에서 혼자 고래고래 함성을 지른다. 혼자 간 쿠바에서는 현지인과 살사를 추고 심지어 발리의 허니문 풀빌라도 혼자 즐긴다. 혼자서 하기엔 머쓱하고 서먹한 일들도 많고, 막상 지내보니 생각보다 무료한 시간들도 많다. 혼자 속절없이 심심해져 버릴 수도 있는 리스크를 감수하면서도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는 '여지'를 만들고자 함이다. 내 일행이 있어야 할 자리에, 정해진 스케줄이 있어야 할 자리에 여지가 생긴다. '가능성'이 생긴다. 자연스럽게 더 많이 새로운 사람들과 말을 섞게 되고, 심지어 소중한 인연을 만나기도 한다. 내가 여행지에서 쉽게 친구를 사귀는 방법이 있는데(뭘까요?), 그건 바로 "나 혼자 매우 재밌게 노는 것"이다! 혼자서 뭐가 그렇게 재밌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드는 여행자를 발견하면 누구라도 즐겁게 다가온다. 타이머를 맞춰놓고 혼자서 점프샷을 신나게 뛰고 있으면, 어디선가 친절한 누군가가 기꺼이 나서서 찍어준다. 그러다 갑자기 맥주 한잔 하러 가게 된다 해도 why not? 나는 저녁 일정을 상의해야 할 일행이 없지 않은가!     


물론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고 소통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혼자 여행하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은, 나 자신과 함께 보내는 오붓한 시간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배고픈 타이밍에 딱 맞춰 식사를 하고, 처음 가 보는 길을 걷다가 쉬고 싶은 곳에서 쉬고, 그날그날의 내가 나의 귀가시간을 정한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조차도 오롯이 나의 의사결정으로 꽉 채워진다. 어떤 이유나 계기로 하루의 결정들을 내렸는지 나만은 잘 알고 있기에, 결정이 마음에 들 때는 훨씬 큰 만족감이 오고 결정이 별로일 때는 즉각적으로 피드백할 수 있다. '내가 왜 그랬지?'싶은 결정 때문에 눈물 쏙 빠지게 고생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책임도 내가 진다. 투정부리고 싶은 마음은, 그 대상이 나이기에 갈 곳 없이 흩어져 버린다. 내가 선택한 하루의 소소한 일들을 내가 감당해 내면서 차곡차곡 쌓이는 자존감은 생각보다 흡족한 기분을 들게 한다. 이렇게 우당탕탕 하루하루가 쌓여 스스로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척척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취향, 자신의 사고방식, 자신의 니즈에 통달하다보면 나라는 사람을 가장 잘 아는 것도 내가 되고, 나를 가장 사랑하는 것도 내가 된다. 그런 사람(나 자신)과 함께 여행하는데 재미가 없을 턱이 없다.  




 혼자 잘 지낸다는 건, 약속이 없어도 심심하지 않고 남에게 의존하지 않으려 하는 것과는 다르다. 민망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혼자 극장에 가거나 식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등의 1인 일상의 내공이 높은 것과는 조금 별개의 문제이다. 내가 나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리딩하고 내 삶을 경영해서 성장하고 성취하는 것이 탄탄한 혼삶이다. 관계의 가치를 깊게 이해하고 내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기 위한 방법을 스스로, 나에게서부터 찾아내고 훈련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혼자일 때 단단하다. 혼자서도 탄탄한 시간을 보낸다. 혼삶이 즐거운 사람은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낼 때도 더욱 즐거울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혼삶을 탄탄하게 하는 과정이 결국은 누구와 함께 살 때를 대비한 준비단계이자 선행학습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이 시대에 태어난 개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사명에 가깝다. 오롯이 나를 곤고하게 하기 위해 하루하루 탄탄하게 혼삶을 쌓아가면 그 포상으로 '내가 원하는 삶의 그림'을 알 수 있게 된다. 이후에는 조금 더 탄탄해진 나 자신과 함께 그림 속 풍경으로 한발씩 걸어가기만 하면 될 일이다.


나는 자유롭고 착한 영혼이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이 영혼을 길들여 왔고 나와 함께 놀도록 가르쳤습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마음대로 비를 내려도 좋습니다
-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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