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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인 한유화 Mar 10. 2022

사람은 어색한 행복보다
'익숙한 불편'을 선택한다

혼삶을 고민하는 계기 (feat. 미셸 우엘벡)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양육된 정신적 시스템에 충실하다.     


  나의 어머니는 혼인을 기반으로 한, 비교적 전통적인 정신적 시스템을 물려받으셨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양육하는 시점에서는 시스템을 한번 업데이트하셨던 모양이다. 엄마에게 있어서 혼인여부는 딸을 양육하는 시스템 안에 포함할 만한 기본 세팅이 아니었다. 업데이트한 시스템에서의 핵심 키워드는 다양한 경험, 주체적인 정서, 당당해도 될 만한 가치관 같은 것들이었던 것 같다.   


  덕분에 나는 '기본 설정' 메뉴가 아닌 하나의 '소프트웨어' 자리에 결혼이라는 키워드를 놓고 내 삶을 설계해 나갈 수 있었다. 이는 나라는 사람에게도 그렇고, 소위 '요즘 세상'에도 꽤나 잘 맞는 시스템이었나보다. 직장인이 되면서 숱하게 써 먹은 엑셀(Excel)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자격증까지 땄으면서, 결혼이라는 소프트웨어는 지금까지도 설치하지 않은 걸 보면 말이다. 




 무언가에 맞서가며 투쟁하듯 비혼을 결정해야만 했던 사람들에게 나는 비혼을 거저 얻은 사람, 수월하게 비혼으로 살 수 있는 여건을 갖고 태어난 '금수저' 같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물려받은 정신적 시스템은 그야말로 황금같은 것이어서 나를 마치 "혼삶계의 귀족"처럼 살게 해 주었다. 내가 혼자 잘 지내게 하는 정서적인 기반은 물론이고, 타지에서 혼자 자취를 시작한 것부터 혼자 죽어라고 여행을 다니고 혼자 타국에서 일하겠다고 떠나는 등의 모든 행보에 대한 가족들의 지지까지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그러므로 내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는 건 상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런 나에게도 결혼을 고려하게 되는 순간과 혼삶을 마음먹게 되는 계기들이 있었고, 그때마다 나는 스스로가 어색한 행복보다 익숙한 불편을 선택하려하는 방어적인 틀에 갇힌 것이 아닌지 성찰하곤 했다.  


  교만하기까지 한 생각과 경험들을 지나오면서 한 가지 깨닫게 된 것이 있다. 

  내게 있어서 혼삶은, 익숙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불편한 것도 아니라는 것. 



⑴ 미셸 우엘벡, <복종>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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