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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인 한유화 Mar 12. 2022

"오늘 비행기 못 타시겠는데요?"

- 혼자 여행 에피소드, 160만원이 걸린 치열한 6시간 (1부)

 "녜...?"

 "비행기를 못 탄다고...? 왜죠? 

  3초간 멍-  


  러시아항공(Aeroflot) 직원의 안쓰러워하는 표정이 생생하다. 

  자, 이것은 6시간 동안 뛰어다니고도 160만원을 날려 멘붕에 빠진 나의 고생배틀 우승 유력 에피소드다. 


  세상에 그렇게 여행과 출장을 다녔어도 이런 일이 발생하는구나. 얼마나 더 꼼꼼하게 챙기고, 어디까지 의심을 해야 되는 걸까 생각하다가도 또 이런 건 어차피 미리 막을 수는 없었겠다 싶어 헛웃음이 난다. 그동안 내가 쌓아온 여행자로서의 내공과 문제해결능력을 테스트하듯 '끝판왕 퀘스트'로서 주어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한.




 설마 했던 '비자'가 날 울렸다. 쿠바 입국을 위한 비자는 쿠바행 비행기를 탑승하는 공항에서 체크인할 때 구매할 수 있는 '여행자 카드' 개념이라는 것을 사전에 확인했다. 쿠바 현지 도착해서도 구매는 가능하나, 가격이 훨씬 비싸다고. 확인 차 폭풍 검색했더니 쿠바 비자를 인천공항에서 미리 구입해 가라는 포스팅이 있네? 인천공항 체크인 카운터에 도착해서 직원에게 비자 구매하겠다고 말했더니, 그는 스릴러 영화처럼 고개를 서서히 들어 올려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이렇게 대답한다. 


 "비자 없으세요......?" (어딘가로 다급히 전화) 

 (어두운 표정을 잠시 유지하더니 이윽고) "오늘 못 가시겠는데요?" 


구매가 불가능한 건 그렇다 치고, 비자가 없으면 인천공항에서의 탑승 자체가 불가하다고???!!!!

 "쿠바행 비행기 탈 때 경유지에서도 살 수 있다던데요"

 "쿠바 공항에 도착해서도 구매할 수 있다는 걸 확인했는데요?" 했더니......


 세상에나.... 하필 러시아 공항만! 그곳에서만 비자를 판매하지 않는단다. 같은 공산국가 동지인 러시아 국적의 사람들은 쿠바에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기 때문에 러시아 공항에서는 쿠바 비자를 안 판다고. 비자 없이 탑승했다가 아예 러시아에서 입출국 거절당하고 한국으로 되돌아온 사례까지 있었다고. 그래서 최근에 한국 공항에서도 미리 비자 검사하는 걸로 바뀌었다고...! 쿠바 현지에서 비자 구입이 가능하다고는 해도 일단 거기까지 갈 길이 없는 것. 왠지 억울한 마음을 직원에게 소심하게 토로해 보았으나, 대부분 캐나다를 경유해서 쿠바에 가는 경우가 많고 나처럼 러시아 항공을 통해 가는 건 매우 드물단다. 




자, 자. 생각을 해 보자.  

혼자 여행하는 "혼행"의 장단점이 바로 이런 것이다. 이 상황에서 절대로 놓칠 수 없는 것은 무엇이고, 그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 나만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의사결정은 거의 생각의 속도로 이루어진다. 붙잡고 원망할 대상이 없으니 '은근히 남 탓하기' 같은 건 쉽지 않고, 당황스러운 마음과 그로 인한 서러움도 봐줄 사람이 없으니 일단 나중으로 미룰 수 있다. 


대안 1) 기존 항공권의 출발 일정을 뒤로 미루고, 그 사이에 에이전시를 통해 비자를 발급받는다.  

: 비자 발급이 영업일 5-7일 걸린다네? 흠... next plan!

: 더욱 비극적인 소식. 러시아항공의 쿠바 가는 항편은 향후 10일 간 전석 매진. 

대안 2) 이 항공권 내다 버리고, 다른 경유지를 거쳐가는 걸로 새로 산다. 

: 러시아를 제외한 멕시코나 캐나다 같은 다른 경유지에서는 확실히 비자를 구했다는 사례가 있으니. 

: but 여행을 위해 평소에 가스비까지 아끼려고 보일러를 안 켜고 살던 나로서는 꽤 큰 돈에 대해 슬퍼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대안 3) 짜증 나니까 안 간다. 

: 하지만 흑화한 나 자신의 부정 에너지는 상당할 것이며, 그런 나를 온전히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 그런 건 도저히 자신이 없다. 




나만큼이나 다급한 마음으로 빠르게 적어준 따뜻한 메모


2안 채택!  

다른 경유지의 항편도 러시아 항공처럼 매진이 되어버렸다면 2안조차 실행 불가. 빠르게 정확한 현황과 정보를 파악하는 게 관건, 스피드가 생명인 상황! 참 공교롭게도 러시아 항공 체크인 줄이 텅텅 비어 있었고(나만 타려고 했나 봐, 나만!) 그 덕분에 직원 분께서 빅스비(아시나요, Bixby?)보다 빠르게 아에로멕시코, 에어캐나다의 발권 데스크와 문의전화를 검색해서 적어주셨다. 


허허, 그러고보니 오늘은 주말이다. 

다수의 에이전시는 오늘 발권 업무를 처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옛 TV 드라마에서는 공항의 항공사 발권 카운터를 찾아가서 "제일 빠른 표로 주세요"하던데, 그러나 꽤 오래전부터 공항에 티켓 판매하는 발권 부스는 없다는군. 아으, 일단 원래 항편의 탑승시간이 지나기 전에 얼른 기존 항편 취소부터 하자.  


'비행기 티켓 어느 사이트에서 샀더라?'

'아 여깄다. 해외 에이전시였네. 문의전화번호는 대체 어딨지?'

'환불이 조금이라도 되려나, 근데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지?'

'이렇게 계속 안 받으면 난 어쩌지?'


(이 고생고생한 서러움을 한 편에 요약할 마음은 없다. 2부에 계속 -)

매거진의 이전글 첫사랑 같았다, 혼자 하는 여행의 시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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