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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인 한유화 Oct 01. 2023

가족, 비빌 언덕인가 vs 넘어야 할 산인가

bgm: <기댈 곳> covered by. 김필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이후의 연령이 되면 꽤 많은 사람들이 서로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번쯤 하게 된다.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는 혼삶도 마찬가지의 고민을 한다. 전통적인 형태의 가족을 만들지 않는다면 어떠한 다른 형태와 방식으로 나만의 '비빌 언덕'을 만들 것인가. 동거하지 않는 다른 형태의 가족, 커뮤니티 등의 유사 가족, 든든한 자금이나 직업 같은 제 3의 무언가에게 의지하려고 하기도 한다.


누군가 혹은 어딘가에 기대고 싶다는 마음과는 대조적으로, 나에게 의존하거나 나를 속박하는 무언가를 원하지 않는 마음이 더 우선하는 경우가 있다. 책 <에이징 솔로>에 나온 한 여성의 인터뷰를 보면 가족 없이 혼자 사는 것의 장점을 '장애물이 없다'는 말로 표현하는 내용이 있다. 가족이 없으면 넘어야 할 산이 없어서 좋은 대신에 비빌 언덕도 없다는 문장을 통해 혼삶의 장단점을 언급한다.




결혼하지 않는 1인 가구는 오히려 부모, 자식, 배우자의 관계 범위에 한정하지 않고 가족의 범위를 확대한다.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한 누군가는 이렇게 오해할 수 있다. 가족이 없는 혼삶은 필연적으로 그 애정과 의존관계가 확장되어 아이돌 '덕후'가 되거나, 조카나 어린 후배에게 여러모로 후한 '이모', '삼촌'이 되거나, 일이나 돈에 더 몰두하는 '워커홀릭'으로 살아감으로써 그 대상에게 삶을 의지한다고.


하지만, 인간이 어떤 것에 기대고 의지하며 살아가는가 하는 문제는 톨스토이 소설의 제목처럼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유사한 질문일 수 있다. 이 소설의 제목은 사람이 '무엇으로 인해' 는지를 묻는 동력과 본질에 대한 관점과, '무엇을 위해' 사는지를 묻는 목적과 지향점에 대한 관점으로 조금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 이에 대한 1인 가구와 다인 가구 구성원의 대답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그 답은 '사람'이기도 하고, 각자가 믿는 '가치'이기도 하다. 좁은 범위에서는 '연대', '소통', '관계'이기도 하고, 다른 의미에서는 '에너지', '세포', '생존'일 수도 있겠다. (그래, 나 T야!) 가족을 만들지 않는 혼삶은 비빌 언덕도 없을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한 객관식 정답으로 '가족'을 체크한 경우일지 모른다.




의지하는 대상과는 정서적인 교감뿐 아니라 삶의 경제적, 사회적인 요소들과 시간, 금전적 에너지까지 얽혀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의지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언제든 나에게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반려 동/식물, 삶을 함께 하는 친구와 동료들, 내가 아끼는 나의 일, 소속된 공동체 등은 모두 장애물일 수 있다. 이 사실을 눈치채든 아니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가족은 실제로 이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기능한다. 하지만 간혹 이중에서 한쪽 측면만을 주로 보고 결혼을 갈망하는 경우가 있다.


결혼이나 가정을 꾸리는 과정은 그야말로 언덕을 쌓는 일과 유사한 점이 많다. 아무 것도 없는 맨땅에 언덕을 쌓는 일은 그 과정 자체로 숭고하고 아름답지만 고생스럽기도 하고 많은 에너지가 든다. 대신 그 언덕이 탄탄하게 쌓이면 '비빌 언덕이 되어 준다'는 장점도 있고 갑자기 그 언덕 너머에 내 삶이 있는 것처럼 생각될 때는 그 언덕 자체가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가족이 자신의 발목을 잡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 때 해야 할 일은 산을 밀어버리는 게 아니라 드나들 터널을 뚫는 일일 것이다. 가족이라는 산을 탄탄히 쌓아 놓았다면, 그 지반이 견고할수록 터널을 뚫기도 쉽다.


마찬가지로 비빌 언덕을 갖고 싶다면 그때 해야 할 일은 급하게 가족을 만들기 위해 안달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묻고 답하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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